[기자수첩] 기자회견에서 본 대통령 레토릭의 한계
[기자수첩] 기자회견에서 본 대통령 레토릭의 한계
  • 석대성 기자
  • 승인 2021.01.19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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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은 너무 잘하니까 별로 질문이 없으신가요." (문재인 대통령, 18일 신년 기자회견)

문재인 대통령의 18일 신년 기자회견을 보고 몇 차례 놀랐다.

일각에선 문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입양 부모의 경우에도 마음이 변할 수가 있기 때문에 입양을 다시 취소한다든지, 또 여전히 입양하고자 하는 마음은 강하지만 아이와 맞지 않는다고 할 경우 입양 아동을 바꾼다든지"라고 했던 것을 구설수로 올렸다.

입양 관련 문 대통령의 발언은 표현 부족에 따른 실수로 보여진다. 대한민국 행정부 수장이자 최고 통치권자가 정말 입양아를 물건 취급했겠는가. 적절치 못한 표현을 구사한 건 잘못이지만, 그의 속뜻과 의도한 바는 발언과 달랐으리라 본다.

이보다 더욱 놀랐던 건 위와 같은 발언이었다. 19일 기준 코로나19 사망자가 1200명을 넘었고, 확진자는 7만명을 돌파했다. 장기간의 사회적 거리두기와 몇 차례의 대유행으로 국민은 피로함과 우울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물론 대한민국의 방역은 세계적으로 인정 받고 있다. 오는 27일에는 문 대통령이 직접 세계경제포럼(WEF)의 '한국 특별회의'에서 방역과 경제 관련 기조연설에 나선다. 정부는 K(한국형)-방역이라고 이름까지 붙이며 대대적 선전에 나서며 자랑하고 있다.

그럼에도 국민의 협조와 자의적 동행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더욱이 코로나19로 사망한 유가족이 대통령의 이러한 말을 들었으면 허탈감에 탄식했을 노릇이다. 이같은 발언은 듣는 나 역시 절망적 상황에 놓인 대한민국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방역은 잘했다고 하지만,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은 절망의 늪에서 여전히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곳곳에선 코로나와 정부를 원망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대기업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법정구속을 본보기로 여기면서 '이익공유제' 같은 여권의 무언의 압박에 마지 못해 끌려가는 모양새다.

또 하나 짚을 점은 청와대가 기자회견 당시 '방역'에 대한 질문을 수 차례 강조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 역시 방역에 대한 질문을 요했지만, 취재진 사이에선 초반부터 정치·정무적 현안에 대한 질의를 쏟아냈다. 정치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자 문 대통령이 언론과의 소통에 소홀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문 대통령은 회견에서 "어느 대통령보다 현장 방문을 많이 했고, 여러 방식으로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지만, 언론을 '패싱'한 대화는 문 대통령과 대화한 당사자가 아니면 알아줄리 만무하다. 간만에 대통령과 마주한 언론으로선 얼마 없는 기회를 놓칠 수 없었고, 전방위적으로 질문이 쏟아진 것은 대통령의 소통이 부족했다는 것을 방증한다.

방역 질문을 유도하던 문 대통령은 서울 동부구치소 사태를 언급하자 한숨을 쉬기도 했다. 다방면에서 터지는 사건을 대통령과 정부가 막는 데엔 한계가 있지만, 행정부 수장의 말실수가 여럿에게 상처를 주고, 또 일부는 수습하기에 바빠졌다. 대통령의 이번 기자회견은 한 사람이 하는 '말의 중요성'이 어떤 파장을 부르는지 새삼 복기하는 시간이었다.

bigstar@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