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소상공인 이자유예 급증에 은행권 부실우려 '눈덩이'
중기·소상공인 이자유예 급증에 은행권 부실우려 '눈덩이'
  • 홍민영 기자
  • 승인 2021.01.0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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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 기준 950억원 규모 두달새 28%↑…3.8조 원금 상환 불투명
코로나19 재확산에 경기회복 지연 "선별 지원으로 연쇄 부실 막아야"
서울의 한 시중은행 영업점 창구. (사진=신아일보DB)
서울의 한 시중은행 영업점 창구. (사진=신아일보DB)

최근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인한 경기 악화에도 시중은행 건전성은 개선세가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정부가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를 겪는 기업들에 대해 은행이 대출 만기 연장·이자 납부 유예 등 금융 지원을 할 것을 주문하면서 신규 연체로 잡히는 규모가 줄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경기회복 지연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지속적인 금융지원은 자칫 은행의 잠재적 부실을 키워 건전성을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금융당국 유동성 프로그램 연장…가계·기업 부채 부실화 우려↑ 

5일 은행권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원화 대출 연체율은 작년 10월 기준 0.34%로 전년 동기 대비 0.12%p 하락했다. 작년 1년간 시중은행 연체율은 0.3~0.41% 수준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대출 만기 연장·이자상환 유예 등을 적극적으로 실시한 영향이 연체율에 반영된 것으로 풀이했다.

앞서 금융당국은 작년 2월 은행에 코로나19로 인해 일시적으로 자금난을 겪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사업 대출에 한해 6개월가량 만기를 연장해주고, 이자 납부를 유예할 것을 주문했다. 이 조치는 애초 작년 8월 말 종료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올해 3월까지 한 차례 연장됐다.

이에 은행권 이자 납입 유예 규모도 매달 불어나고 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작년 11월 말 기준 전체 은행권의 이자 납입 유예 규모는 950억원(8358건)이다. 9월 말 740억원보다 28% 늘어난 수치다. 평균 적용 금리를 연 2%로 가정했을 때, 원금 약 3조8000억원의 상환 가능성이 불투명한 셈이다. 

제조업·비제조업 업황 전망BSI 추이. (자료=한은)
제조업·비제조업 업황 전망BSI 추이. (자료=한은)

하지만 아직 국내 경기 지표는 좋지 않다. 지난달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0년 12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에 따르면, 전 산업 업황 실적 BSI는 75로 한 달 전보다 3포인트 하락했다. 지수는 작년 10월부터 두 달 연속 개선됐지만, 코로나19 재확산으로 3개월 만에 하락세로 돌아섰다.

BSI는 현재 경영상황에 대한 기업가의 판단과 전망을 조사한 통계로, 부정적 응답이 긍정적 응답보다 많으면 지수가 100을 밑돈다. 

설상가상 정부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수도권 2.5단계와 비수도권 2단계의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을 오는 17일까지 2주간 연장하기로 하면서, 소상공인 및 자영업자의 피해는 가중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미 서민금융 상품은 연체율이 오르고 있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신용등급 6등급 이하 서민들의 자립을 위해 마련된 미소금융 연체율은 2017년 3.9%에서 지난달 5.2%로 상승했다. 신용등급 6등급 이하 저소득 근로자를 위한 근로자 햇살론의 대위변제율(정부가 채무자의 빚을 대신 갚아준 비율)도 같은 기간 5.5%에서 10.5%로 올랐다. 이처럼 가계부채의 가장 약한 고리인 취약계층의 부실화 우려가 커지며, 금융권의 연쇄적인 부실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은도 지난 24일 공개한 금융안정보고서를 통해 "코로나19에 대응한 원리금 상환유예 등으로 부실 위험이 미뤄지고 있는 데다, 주택담보대출보다 연체율이 높은 신용대출의 가파른 증가세 등을 고려하면 중장기적으로 가계부채 부실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 회생여력 높은 기업·이자 부분 상환 조건 등 차별화 필요

이런 금융권 부실 우려에 전문가들은 기업·업종별 선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올해 상반기까지는 코로나19 여파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므로, 대출 만기 연장 및 이자 납부 유예 등 금융지원을 지속할 필요는 있다"면서도 "다만 이자 납부가 가능한 기업의 경우엔 이자라도 납부하게 하고, 회생 가능성이 높은 회사 위주로 선별적 지원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금융회사가 나름의 부실 규모를 판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업의 상환 여력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하는 등 조치가 필요할 듯하다"고 말했다.

김영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이자의 부분 상환을 조건으로 대출 만기 연장을 해준다거나, 민간 금융회사와 차주간 자율적인 만기 연장 등 채무 재조정에 대해서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현 상황에서 기업의 금융지원을 중단하고,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한다는 일각의 의견에는 반대했다. 

김 교수는 "각 기업이 원래부터 한계기업이었을 수도 있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가 찾아온 것일 수도 있어 당장 구조조정 대상을 분류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금융당국은 코로나19 진행 상황을 주시하며 이달부터 금융권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금융지원 연장 여부를 최종 결정할 방침이다. 

hong93@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