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은행 배당 여력 축소 권고에 전문가들 "실효성 없어"
당국 은행 배당 여력 축소 권고에 전문가들 "실효성 없어"
  • 홍민영 기자
  • 승인 2020.12.30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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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실흡수 능력 키우려면 배당보다 충당금 적립률 높여야
국내은행 적립금 총 채권의 0.5%…글로벌 은행 대비 낮아
4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 전경. (사진=신아일보 DB)
4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 전경. (사진=신아일보 DB)

최근 금융당국이 코로나19 사태에 대비해 은행권에 배당 축소를 권고한 가운데, 전문가들은 배당 제한 정책은 은행의 손실흡수력을 높이는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30일 금융투자업계 및 학계 전문가들은 최근 당국의 은행권 배당 축소 권고에 대해 정책적 실효성이 없다고 봤다. 은행의 손실흡수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배당 여력을 줄이기보단 대손충당금 적립률을 높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영수 키움증권 연구원은 "충당금 적립이 아닌 배당 성향만 규제하게 되면 경영진은 배당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 충당금 및 인력 구조조정 비용 등을 줄여, 이익을 극대화해 규제를 회피할 수도 있다"며 "코로나19는 예측이 가능한 이슈이므로, 이는 자본 여력을 규제하기보다 충당금 적립을 강화함으로써 대비하는 것이 맞다"고 설명했다. 

안동현 서울대 교수도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해선 은행의 충당금을 더 쌓도록 하는 것이 목적에 맞는 대책 아닐까 싶다"며 "어차피 충당금 적립액이 늘어나면 은행의 순이익은 줄어들면서 간접적으로 배당 여력이 축소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은행의 충당금 적립률이 글로벌 은행과 비교했을 때 낮은 수준이라는 점도 지적됐다. 국내 은행은 총 채권의 0.5~0.6%를 충당금으로 적립하고 있지만, JP모건체이스 등 글로벌 대형은행은 총 채권의 2.3%를 충당금으로 쌓고 있다는 게 서 연구원의 설명이다. 

당국이 충당금이 아닌 배당 성향을 규제하는 데는 은행의 인력 구조조정으로 인한 경기 위축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충당금 적립 확대는 은행들의 손실흡수능력을 강화할 수 있을 가장 일반적인 방안이지만, 이 경우 은행의 순이익 감소로 연결되면서 어느 정도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진다. 

서 연구원은 "금융당국이 과거와 달리 배당 성향 규제안을 꺼내든 이유는 구조조정에 따른 경기 악화라는 부담을 피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며 "그러나 이제는 은행들이 구조조정을 추진해 잠재적 부실을 줄이고, 돈 풀기 정책을 줄여 과도한 자산가격 버블을 해소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동현 서울대 교수는 "당국이 금융사에 대한 정책을 펼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그 정책의 목표"라며 "이런저런 우려를 다 따져서 제일 뒷 순위에 있는 배당성향을 조절하겠다는 것은 은행의 손실흡수능력 제고라는 목적에 부합하지도 않을뿐더러, 민간회사에 대한 무리수를 둔 것 아닐까 한다"고 덧붙였다. 

당국이 은행 건전성을 관리하는 차원에서 자본 여력에 개입하더라도, 개별 회사의 상황에 따라 접근을 달리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금융당국이 우리나라 금융시장의 건전성을 관리한다는 차원에서 금융회사의 자본 확충이 어느 정도 이뤄지도록 개입할 여지는 있다"면서도 "주주와 경영진, 주주 간 관계가 회사별로 다르기 때문에, 배당 축소 여부는 개별 회사의 상황을 고려해서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한편, 은행들의 배당 축소 부담은 지난주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의 발언으로 배당 제한폭이 당초 우려만큼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며 다소 완화됐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지난 23일 열린 온라인 송년간담회를 통해 "은행 배당 성향과 관련해서는 지속적인 조율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며 "순이익의 15~25% 수준에서 조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당초 순이익의 20%까지를 배당 마지노선으로 권고했던 기존 안보다 완화된 수준이다. 작년 신한·KB·하나·우리 등 4대 금융지주 배당성향은 25~27% 수준으로 배당금 약 2조9000억원이 지급된 바 있다.

다만 그는 "금융회사들이 섣불리 큰 배당금을 지급한다면 내년 코로나19 상황이 악화했을 때 자본금 여력이 부족할 것이고, 이는 금융회사의 기업 가치를 하락시킬 요인"이라며 "코로나19 상황이 악화할 가능성은 적지 않으므로, 금융사는 적정 자본을 보유하고 있다가 나중에 상황이 완화되고 나서 얼마든지 배당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배당 축소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hong93@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