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괴롭다. 가해자와 분리해달라"…코레일테크 직원들 '불편한 동거'
[단독] "괴롭다. 가해자와 분리해달라"…코레일테크 직원들 '불편한 동거'
  • 천동환 기자·남정호 기자
  • 승인 2020.11.30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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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한 사유 없는 '연차 휴가 반려·축소'로 부서 내 상하 갈등
법원 '벌금형'에 노동청 '조처 시급' 권고에도 매일 함께 근무
피해자 지속적 도움 요청에 회사는 "이미 끝난 일. 방법 없어"
직장 내 괴롭힘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코레일테크 직원들이 근무 중인 대전시 동구 철도공동사옥과 임재익 코레일테크 대표이사. (사진=신아일보DB·코레일테크 홈페이지)
직장 내 괴롭힘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코레일테크 직원들이 근무 중인 대전시 동구 철도공동사옥과 임재익 코레일테크 대표이사. (사진=신아일보DB·코레일테크 홈페이지)

국토교통부 산하 철도기술 공기업 코레일테크에서 직장 내 괴롭힘 갈등이 곪아가고 있다. 이 회사 일부 직원들은 같은 부서 상사로부터 정당한 사유 없이 연차 휴가 신청을 거절당하는 등 괴롭힘을 당해왔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피해자들은 법원으로부터 벌금형까지 받은 가해 상사와 분리근무를 요청하고 있고, 노동청에서도 시급한 조처를 권고한 상태다. 그러나 코레일테크 사측은 이미 징계 조치가 끝난 일이고 분리근무도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갈등을 방치하고 있다.

30일 한국철도공사 자회사 코레일테크와 대전지방고용노동청 등에 따르면, 대전노동청은 지난 4월 코레일테크 임재익 대표이사와 진정인 5인 앞으로 '직장 내 괴롭힘 진정서 관련 알림'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발송했다.

이 공문에는 코레일테크 시설경비처에 소속된 한 부서 내에서 일어난 직장 내 괴롭힘 민원에 대한 대전노동청의 권고 사항이 담겼다.

코레일테크 시설경비처에서 근무하는 A 씨는 같은 부서에 근무하는 일부 직원들이 신청한 연차유급휴가를 반려하거나 축소했다. 진정인들은 이런 행위가 불법이라고 주장하며, 지난 2018년 12월에 처음으로 회사에 문제를 제기했다.

A 씨와 진정인들은 코레일테크 업무를 수행하던 용역업체에서 함께 근무하던 중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에 따라 지난 2018년 코레일테크로 함께 입사했다. 코레일테크는 진정인들이 문제 삼은 괴롭힘이 전 회사에서부터 있었던 일이라며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그러자 진정인들은 국민신문고를 통해 국토교통부와 대전노동청에 진정을 냈다. 사건을 조사한 대전노동청은 공문을 통해 코레일테크 진정인들과 A 씨 간 불신이 깊어 그에 따른 신체·정신적 고통이 상당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또, A 씨가 이 사건으로 인해 형사처벌까지 받은 점을 고려하면, 직장 내 괴롭힘 행위 성립 여부와 무관하게 사태가 더 이상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처가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코레일테크에 전달했다.

A 씨는 대전노동청 권고에 앞서 지난해 11월 대전지방법원으로부터 약식명령을 통해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벌금 50만원을 선고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A 씨가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없는 상황에도 신청 시기에 연차유급휴가를 주지 않았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작년 11월 대전지방법원이 코레일테크 A 씨에 대해 내린 약식명령 통지서. (사진=제보자)
작년 11월 대전지방법원이 코레일테크 A 씨에 대해 내린 약식명령 통지서. (사진=제보자)

진정인들은 회사가 이 문제를 사내에서 공식적으로 정리하고, A 씨와 진정인들 간 분리근무 조처를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진정인 B 씨는 "회사에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를 시켜달라는 부분에 대해 계속 주장했었고, 관철되길 바랐던 것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코레일테크는 이미 해당 건에 대해 징계가 이뤄져 재처분은 불가하다며 진정인들의 분리근무 요구를 거부하고 있는 상태다. 

사측은 작년 1월21일 A 씨에게 징계를 통보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에 공개된 감사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사측은 A 씨가 소속 직원의 연차휴가 요청에 대해 미승인하는 과정에서 친절·공정의무를 위반했다며 주의 징계를 내렸다.

코레일테크 관계자는 "(해당 건과 관련해) 이미 주의 징계를 줘 일사부재리 원칙에 따라 재처분은 어려운 상황"이라며 "근무지 변경을 시키는 건 같은 건으로 똑같은 죄를 또 묻는 것이기 때문에 이게 원칙적으로 그렇게 되면 안 된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사측은 당장 A 씨를 대체할 만한 인력이 없다는 점도 분리근무 조치가 어려운 이유로 제시했다.

코레일테크 관계자는 "A 씨는 철도기관 공동사옥 시설관리 중에 가장 중요한 기술적 업무를 하고 있는 직원"이라며 "타 분야로 업무 전환이 되지 않을뿐더러 같은 분야에 근무하는 직원들 중에서도 이쪽으로 오려고 하는 분들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올해 4월 대전노동청이 코레일테크 직장 내 괴롭힘 사건과 관련해 코레일테크 임재익 대표이사와 진정인들에게 전달한 권고문. (사진=제보자)
올해 4월 대전노동청이 코레일테크 직장 내 괴롭힘 사건과 관련해 코레일테크 임재익 대표이사와 진정인들에게 전달한 권고문. (사진=제보자)

한편, 작년 7월 사용자나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우위를 이용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를 금지하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됐다. 법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한 경우 사용자는 즉시 이를 조사하고 피해 직원의 희망에 따라 근무 장소 변경이나 유급 휴가 명령 등 적절한 조처를 해야 한다.

다만, 이번 코레일테크 사건의 경우 주된 문제 행위가 법 시행 전에 일어나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적용이 어려운 상황인 만큼 사측의 의지가 앞으로 문제 해결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대전노동청 감독관은 "법 시행 이전에 종결된 건에 대해서는 대상 자체가 아니라서 소급이 안 된다"며 "시행일 이후 발생한 건부터 적용하는 것으로 돼 있다"고 말했다.

cdh4508@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