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사자 발굴유해, 고(故) 명한협 일병 153번째 확인
6·25 전사자 발굴유해, 고(故) 명한협 일병 153번째 확인
  • 허인 기자
  • 승인 2020.10.26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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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6월 강원 춘천 가평-화천 진격전 중 전사 추정
고 명한협 일병 결혼식 당시 사진.(사진=국방부)
고 명한협 일병 결혼식 당시 사진.(사진=국방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2017년 5월 2일 강원도 춘천 오항리 일대에서 발굴한 유해를 고(故) 명한협 일병(현 계급 일병. 사진)으로 신원 확인했다고 26일 밝혔다. 고 명한협 일병의 신원확인은 2000년 4월 유해발굴을 위한 첫 삽을 뜬 후 153번째다.

이번 신원확인은 아들인 명갑원(72세)씨가 2010년에 유전자 시료를 채취하고 10년을 기다려오던 중, 발굴된 유해와 고 명한협 일병의 유전자를 비교 분석한 결과를 통해 부자관계를 확인하여 이뤄졌다.

고 명한협 일병은 부산 육군 훈련소로 입대 후 국군 제6사단 소속(추정)으로 6․25전쟁에 참전했으며, 가평-화천 진격전(1951. 5.22. ~ 5.30.)을 겪은 후 전사한 것으로 국방부는 추정했다.

가평-화천 진격전은 국군 6사단이 중공군(제187, 188, 189사단)의 공격을 막아내고 화천까지 진격한 전투다.

이 교전에서 경계부대인 6사단 2연대는 3일 동안 중공군의 공격을 방어해내고 공격으로 전환했다. 이에 중공군은 가평 북측으로 후퇴했고, 6사단은 이들을 추격하며 가평과 춘천을 거쳐 화천 발전소까지 60Km가량 진출해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고 명한협 일병은 69년이 지나서야 대퇴부, 윗 팔 부분의 유해 몇 점만 후배 전우들에게 발견됐다. 단서가 될 수 있는 유품은 한 점도 발견되지 않았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유가족들과 협의를 통해 귀환행사와 안장식을 치르고 유해를 국립현충원에 안장할 예정이다.

고 명한협 일병은 1925년 8월 28일 경남 사천시 이홀동 일대에서 6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951년 2월경, 고인은 26살이 되던 해 세 살배기 아들을 두고 국가를 위해 군대에 입대하여 6·25전쟁에 참전했다. 아내 이분악씨는 평생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다가 1993년 세상을 떠났다.

고인의 아들 명갑원씨는 “아버지가 돌아오시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포기하고 살았는데 찾게돼 정말 기쁘면서도 믿기지 않아 덤덤한 마음”이라며 “빨리 아버님을 만나고 싶다.”라고 말했다.

[신아일보] 허인 기자

ih@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