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기사 사망,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택배기사 사망,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 이성은 기자
  • 승인 2020.10.19 15: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택배대책위 "숨진 한진택배 노동자 과로사 아닌 타살"
올해 사망한 택배 업계 노동자 12명 중 택배기사 9명
숨진 한진택배 김모씨 "잠 한숨 못자고 너무 힘들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19일 서울 중구 한진택배 본사 앞에서 최근 숨진 한진택배 기사 김모씨와 관련해 한진택배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이성은 기자)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19일 서울 중구 한진택배 본사 앞에서 최근 숨진 한진택배 기사 김모씨와 관련해 한진택배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이성은 기자)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최근 과로사로 추정되는 택배 기사들의 잇단 사망과 관련해 19일 한진택배에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는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대책위는 이와 함께 정부의 안일한 조치를 비판하면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가운데, 정부는 같은 날 국내 택배사의 주요 서브 터미널 40개소와 대리점 400개소를 대상으로 과로 등 건강장해 예방을 위한 안전보건 조치를 긴급점검 계획을 밝혔다. 업계는 정부의 이번 긴급점검이 어떠한 결과로 이어질지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대책위는 이날 서울 중구 한진택배 본사 앞에서 한진택배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추석 연휴를 앞두고 시급하게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과로로 쓰러지는 택배노동자가 계속 발생할 것”이라며 “과로사가 아닌, 처참한 심야배송이 부른 타살”이라고 주장했다.

대책위에 따르면 한진택배 동대문지사 신정릉대리점에서 근무하던 김모씨는 지난 7일 “420개의 물량을 배송했다”고 밝힌 뒤 5일이 지난 10월12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에 대해 대책위는 “한진택배는 업계 1위 CJ대한통운보다 물량이 적어 상대적으로 배송구역이 넓은 만큼 배송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한진택배에서 200개를 배송하는 시간은 CJ대한통운에서 300∼400개를 배송하는 시간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씨가 지난 7일 배송했던 420개 물량은 CJ대한통운의 800∼900개 수준과 맞먹는 양”이라고 강조했다.

김씨는 숨을 거두기 4일 전인 지난 8일 새벽 4시28분에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메신저를 통해 동료에게 “집에 가면 (새벽) 5시인데, 밥 먹고 씻고 바로 터미널 가면 한숨도 못자고 나와서 터미널에서 또 물건정리(분류작업) 해야 한다”며 “너무 힘들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대책위는 올해 들어 CJ대한통운 5명, 쿠팡 4명, 한진택배 1명, 로젠택배 1명, 우체국택배 1명 등 총 12명이 사망했고, 이 중 택배기사는 9명이 사망했다고 부연했다.

대책위는 정부의 안일한 대응도 비판했다. 대책위는 “정부와 주요 택배사들은 지난 8월 심야 배송을 하지 않기로 노력한다고 합의했지만, 고용노동부는 현장에 나와 실사한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앞서 고용노동부는 지난 8월13일 한국통합물류협회, CJ대한통운, 한진, 롯데글로벌로지스, 로젠 등 4개 주요 택배사와 매년 8월14일을 ‘택배 쉬는 날’로 지정했다. 아울러, 택배사와 영업점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심야 배송을 하지 않도록 노력하기로 합의한 ‘택배종사자 휴식 보장을 위한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다만, 이 공동선언은 법적 구속력은 없다.

박석운 대책위 공동대표는 “(택배기사 사망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며 “그들을 사망하게 놔둬선 안 되며, 신속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고용노동 위기 대응 태스크포스(TF) 대책회의에서 “CJ대한통운, 한진택배 등의 주요 서브 터미널 40개소와 대리점 400개소를 대상으로 오는 10월21일부터 11월13일까지 과로 등 건강 장해 예방을 위한 안전보건 조치 긴급 점검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원청인 택배사와 대리점이 택배기사에 대한 안전·보건 조치를 관련 법률에 따라 이행했는지 여부를 철저하게 점검해 위반 사항 확인 시 의법 조치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selee@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