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칼럼] 저출산 이야기 ⑫ 북한의 출산율
[기고 칼럼] 저출산 이야기 ⑫ 북한의 출산율
  • 신아일보
  • 승인 2020.09.24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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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식 저출산문제연구소장
 

1945년경 대부분의 여성은 아이를 8~12명 정도 낳았으며 출생아의 절반은 영유아기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방과 함께 남북한은 갈라지고 출산율은 다른 행보를 보인다.

북한은 해방 후 소련이 통치하기 시작하면서 사회주의 정책을 편다. 자산과 생산수단을 국유화하고 무상배급, 무상육아, 무상교육, 무상의료, 무상주택을 제공한다. 해방 전 북한지역에는 공장이 많았으며, 공산권의 막대한 원조와 소련식경제개발 모델을 도입해 경제가 빠르게 성장한다. 1961년 북한의 GDP는 195달러로 남한의 82달러보다 2.5배나 높았다. 이와 같이 잘 살고 복지가 잘 갖춰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출산율은 남한보다 빠르게 하락한다. 이 당시 북한은 산아제한정책을 펴지도 않았다. 오히려 전쟁으로 감소한 인구를 보충하고자 출산장려정책을 폈다. 1949년 북한의 인구는 962만명이었으나 1953년에는 849만명으로 감소한다. 전쟁으로 사람들이 죽거나 남한으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구감소를 극복하고자 전쟁 직후부터 1960년대까지 출산장려정책을 폈다. 임산부에 대해 의사담당제를 실시하고 완벽에 가까운 탁아소를 운영해 육아에 어려움이 없도록 했다. 이러한 탁아소는 1990년대 경제 위기가 올 때까지 유지됐다.

완벽한 탁아소와 복지에도 불구하고 출산율은 남한보다 빠르게 하락했다. 강력한 출산장려정책을 실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남한보다도 출산율이 더 빠르게 하락했다. 이런 현상은 다른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보여주는 바와 같이 사회주의체제에서는 자녀가 부모에게 주는 이익이 매우 적기 때문이다.

남북한의 GDP는 1973년에 역전되는데, 남한의 GDP가 북한을 앞지르면서 남한의 출산율은 가파르게 하락하고 북한의 출산율은 하락세가 완만해진다.

남한에서는 1960년대부터 산아제한 정책을 실시했는데, 북한도 1970년부터 국가에서 피임을 시켜주고 셋째 이상 출산시에는 출산 휴가를 제한하는 등의 산아제한정책을 실시한다.

하락하던 북한의 출산율은 1998년 이후 더 이상 하락하지 않는다. 1998년 9월부터 실시한 출산장려정책이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이다.

1989년 폴란드인민공화국이 붕괴되고 1991년에는 소련, 1992년에는 나머지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가 모두 붕괴된다. 소련과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의 원조가 중단되고 교역이 감소함에 따라 북한의 경제는 추락한다. 경제 상황이 점점 악화돼 1990년대 중반부터 배급이 중단됐으며 300만명이 굶어 죽는다. 노동력과 군병력이 부족하고 출산율이 2.04명으로 낮아지자 1998년부터 출산장려정책을 실시한다. 임신 여성과 산모에게 식량 우선 배급과 휴직, 노력동원 면제, 주택 우선 배정의 정책을 실시한다. 규제 정책도 실시한다. 가장 강력한 규제 정책은 2자녀 이상 있는 부모에게만 당원 자격을 주는 것이다. 출세하기 위해서는 당원이 돼야 하기 때문에 이 정책은 매우 효과가 있었다. 2015년부터는 낙태는 물론이며 피임도 금지하고 있다.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출산율이 남한보다 두 배나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물리적 안전과 경제적 안전이 미흡해 가족의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삶의 환경이 어려울수록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은 가족이기 때문이다. 당원 자격 같은 규제 정책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연좌제 때문에 가족의 가치가 높은 것도 출산율이 높은 이유이다. 1990년대 경제 위기가 오면서 배급이 중단돼 사회주의가 퇴조한 것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북한의 출산율은, ‘인간은 환경보다는 필요에 의해 출산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김민식 저출산문제연구소장

※외부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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