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목사가 나서는 비참한 나라
[기자수첩] 목사가 나서는 비참한 나라
  • 석대성 기자
  • 승인 2020.09.22 13: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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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몸을 내던져서라도 악법을 막아야 했던 제1야당의 숙명을 헤아려달라. 당시 원내대표인 내가 모든 것을 짊어지겠다." (나경원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나는 죄인이지만, 나의 죄는 이 법정이 정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 정권의 폭주를 막지 못한 것에 대해 국민께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

지난 21일 특수공무집행 방해 등 혐의를 받는 나경원 전 원내대표와 황교안 전 대표가 서울남부지방법원에 출석했다. 이들은 지난해 4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의 '패스트 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막는 과정에서 정치개혁·사법개혁특별위원회 회의장 점거를 주도, 검찰은 이들을 회의 개최를 방해한 혐의로 지난 1월 불구속 기소했다.

대한민국이 지나고 있는 이 시기와 현실을 겪으면서, 그리고 기자로서 역사의 현장을 직접 보고 대중에게 그 소식을 전하면서 기가 막힐 때가 많다. 요즘 지인 중 일부는 필자에게 광화문 집회와 전광훈 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묻는다. 그 집단과 그에 대한 평가를 원하는 듯하지만, 내포한 의중은 그들에 대한 비판을 바라는 것 같다.

다만 대한민국이 역성장의 길로 선회한 상황에서, 되려 질문하는 사람에게 '당신은 나라가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무엇을 하셨나' 묻고 싶다.

그들 역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이같은 상황에서 아무것도 안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나라 걱정에 소리치는 것이지, 최소한 나라가 망하라고 소리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광복도, 군부 독재에서의 민주화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도 누군가 외쳤기 때문에 가능했다. 현 정부에 대한 쓴소리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다.

슬픈 사실은 나라 실정을 논리적으로 부각할 대단한 정치인이 없다는 것이다. 다소 논리력이 떨어지고 이단 의심까지 받는 한 명의 목사가 집회 중심에 서 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신 앞에서 기도해야 할 성직자는 왜 광화문에 나갔는지, 이 과정에서 광화문에 나간 사람들은 왜 자신의 신까지 비하하는 전 씨를 의지해야 했는지, 이같은 사실이 더욱 비참한 것이다.

나 전 원내대표와 황 전 대표의 재판과 이에 앞서 '패스트 트랙' 사태도 대한민국을 위한 충정에서 몸을 던졌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할 수 있는 사람도 이들뿐이었다. 정치는 '자신이 생각하는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기에 당시 불거진 충돌 또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현재는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을 일부 극우단체가 하고, 이들과 관계가 없는 교회와 목사까지 비난을 받고 있다. 만년 여당이었던 정통보수 공당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체제로 접어들면서 그나마 있었던 야성도 전부 상실했다.

코로나19 정국이 이어지고 있다. 개인의 자유나 종교의 자유 등 모든 것에 대한 정부의 제한이 합리화되는 상황이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김창룡 경찰청장에게 "추석 연휴와 개천절, 한글날 집회 복병이 남아 있다"며 "경찰의 명운을 걸고 공권력이 살아있다는 것을 국민 앞에 보여주는, 결연한 의지로 원천 차단해달라"까지 주문했다.

여러 사정을 감안해 코로나19로 모든 국민이 힘든 상황에서 현 정권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를 낼 방안은 광화문이 아니어야 한다.

일부 인사는 '정부가 교회 집회를 강하게 제한한다'고 비판한다. 대중교통에서 마스크를 안 쓰고 현 정부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다가 다른 승객과 마찰도 빚고 있다. 하지만 정부도 나라와 국민을 위해 집회를 막고 방역 지침을 내리는 것이다. 핍박이 아니라 감염증 때문이다. 코로나19 국면에서 광화문 시위는 과연 적절한 것인지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bigstar@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