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 야인'서 '여당 당대표' 오르기까지… 이해찬 32년 정치 마무리
'만년 야인'서 '여당 당대표' 오르기까지… 이해찬 32년 정치 마무리
  • 석대성 기자
  • 승인 2020.08.28 18: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해찬, 전당대회 후 정계 은퇴… "남북 평화 위해 노력"
DJ 시절 교육부 장관 등 역임… 급진 개혁으로 비판 받기도
가장 아쉬운 점은 '남북관계'… 잘한 일은 '21대 총선 대승'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당 유튜브 채널 '씀TV'를 통해 비대면 퇴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국회사진기자단)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당 유튜브 채널 '씀TV'를 통해 비대면 퇴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국회사진기자단)

"저는 내일로 32년간의 정치 생활을 마감하게 된다. 앞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하겠다. 일평생 공인으로 살면서 고비마다 국민께 많은 성원을 받았다. 결코 잊지 않겠다."

28일 정계 은퇴를 하루 앞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가장 아쉬웠던 부분으로 '남북 관계'를 들었다. 이 대표는 지난 6월 동북아평화경제협회 이사장에 취임해 정계 은퇴 후 남북 관계에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이 대표는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당사에서 온라인 퇴임 기자회견을 갖고 "남북이 충분하게 교류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싶었다"며 "처음에 잘 나가는 듯했으나, 요즘에는 교착상태에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선 안 된다는 문제 의식을 분명히 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대화로 풀어가야 한다"며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길이다. 분단을 극복 하지 않고는 나라 발전에 한계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재임 중 성과로 4·15 총선 승리와 시스템 정당 구축을 꼽았다.

이 대표는 "2년 전 민주당 대표로 나서면서 집권당의 안정과 혁신을 통해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뒷받침하고 총선 승리를 통해 재집권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약속드렸다"며 "그동안 당을 민주적으로 운영하고 안정시키는데 최선의 노력을 했다. 개혁 입법을 처리했고 코로나19 정국에 성공적으로 대응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총선에서 큰 성과를 거두고 임기를 마치게 돼 다시 한번 감사하다"며 "우리 국민은 세계 어느나라 사람보다 뛰어나다. 우리는 위기 앞에 항상 단결했고 그 위기를 발판으로 더 큰 전진을 이룩해왔다. 서로 단합하면 그 어떠한 고난도 돌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거대 여당으로서 야당과 협치가 부족하지 않았냐'는 비판에는 "충분히 토론은 하되, 매듭은 지어나가야 한다"며 "소수자의 의견을 충분히 존중하면서 다수의 의견을 채택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원리"라고 답했다.

부동산 투기 열풍 문제에 대해선 "임대차 3법 등은 20대 국회에서 잘 처리됐으면 지금 훨씬 부동산 정책이 안정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소회했다. 또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에 대해선 "정상화로 가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평가했다.

또 "최근 집값이 많이 올라서 국민의 걱정이 많은 것을 안다"며 "현재 상황은 쉽게 풀어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집 없는 사람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주거 대책에 역점을 둬야 한다"고 주문했다.

당의 소통 구조가 '폐쇄적'이라는 지적에는 "우리 당은 극렬 지지층만 대변하지 않는다"며 "당의 건전한 비판은 얼마든지 수용한다. 인위적으로 통제하지 않았다"고 일축했다.

금태섭 전 의원의 징계 재심에 대해선 "내일 임기가 종료되니 (결론은) 차기 지도부로 불가피하게 넘어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지지율 하락에 대해선 "일희일비해서는 안된다"고 일축했다. 국민을 위해 얼마나 진실하고 정성스럽게 임하는 것인지가 중요하다는 게 이 대표 설명이다.

'20년 집권론'도 다시 꺼내들었다. 이 대표는 "정책이 뿌리 내려 흔들리지 않으려면 적어도 10~20년이 걸린다"며 "안정된 정권이 재창출돼 정책을 뿌리 내리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차기 대권 유력 주자와 관련해선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라며 "현재 거명되는 분들이 있는데, 그냥 늘 그렇게 항상 가는 것은 아니다. 늘 다가오는 파도타기라는 생각을 갖고 임해야 한다"고 훈수했다.

1952년생인 이 대표는 노무현 정부에서 제36대 국무총리를 지냈다. 20대 국회의 당내 최다선인 7선 국회의원 영예를 안기도 했다. 특히 20대 총선에선 공천에서 떨어졌지만,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지난 1980년에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돼 재판을 받고 투옥됐다가 수감 2년 6개월 만에 성탄절 특사로 석방되기도 했다. 이후 재야운동에 본격적으로 투신해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총무국장에 선출됐다. 전두환 정권은 이 대표를 요시찰 인물로 삼아 감시했으나, 반독재운동과 출판 활동 등에 종사했다. 6월 항쟁 당시엔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상황실장을 맡기도 했다.

1998년부터 1999년까진 교육부 장관을 지냈다. 재임 기간 동안 주로 고등학교 평준화와 연합고사 폐지, 보충수업 폐지 등의 개혁안을 추진했다. 교원의 촌지 근절과 교원 뇌물수수 집중 단속으로 교직 사회 비리 근절을 꾀했다. 입시 개혁도 추진했는데, 성급한 개혁으로 이른바 '이해찬 세대'를 대거 양성해 그들이 수능에서 참패하게 했단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

'선거에서 지는 법을 모른다'는 이 대표는 현대 정치사에 기록으로 남을 180석 거대 여당 탄생의 주역으로 퇴진하게 됐다. 2년 임기 내 야당의 헛발질로 '야당 복'을 톡톡히 누렸던 민주당은 '조국 사태' 등 각종 악재 속에서도 180석 거대 여당으로 올라섰다. 특히 청와대와 정부 부처를 상대로 당-정-청 관계를 재확립한 것은 당의 위상을 높인 대표적 성과로 꼽힌다.

다만 지나친 지도력은 '독선'이란 오점도 남겼다. 야당에 손을 내밀거나 소통하기보다, 비판과 압박에 주력했다. 당내 몇 안 되는 소신 발언도 불통으로 일관하며 함구령을 내리기 일쑤였다.

막말도 여론의 공분을 샀다. 지난달 24일 세종을 찾아 행정수도 이전을 언급하며 서울을 놓고 "이런 천박한 도시를 만들면 안 된다"고 하는가 하면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는 부산을 '초라하다'고 해 구설에 올랐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빈소 앞에선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 관련 질문을 하는 기자에게 'XX자식'이라고 말했다가 사과하기도 했다. 올해 총선 정국 때인 지난 1월에는 '영입인재 1호'인 최혜영 당시 강동대학교 교수의 영입 일화를 공개하는 과정에서 "선천적인 장애인은 의지가 약하다고 한다"며 장애인 비하 발언을 했다가 뭇매를 맞기도 했다.

bigstar@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