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뚫린 입법부 방역… 정치권 '비대면 표결' 부심
또 뚫린 입법부 방역… 정치권 '비대면 표결' 부심
  • 석대성 기자
  • 승인 2020.08.27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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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평균 1000명 방문 국회… 지난 2월 이어 또 '폐쇄 후 방역'
현행법 '비대면 표결' 근거 없어… 거리두기 2단계도 못 지켜
영국, 한시적 원격 표결하고 미국은 대리표결… 대응안 절실
국회 출입 기자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으로 27일 오전 국회 본관이 폐쇄돼 출입구가 굳게 잠겨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회 출입 기자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으로 27일 오전 국회 본관이 폐쇄돼 출입구가 굳게 잠겨 있다. (사진=연합뉴스)

입법부 방역이 또다시 뚫린 가운데 '비대면 표결'을 두고 정치권이 부심하고 있다.

비대면 표결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어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를 지키기 위해 입법 의무를 포기하거나, 의무를 다하기 위해 행정부 지침을 어겨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국회는 지난 2월에 이어 27일 또 한 번 폐쇄·방역에 들어갔다. 전날 여당 최고위원회의를 취재하던 한 언론사 사진기자가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아 0시를 기해 본관·의원회관·소통관·어린이집 등 일부 건물을 하루 동안 닫고, 결산 심사 중이던 각 상임위원회도 일정을 미뤘다.

현재 국회 직원과 의원 보좌진, 언론사 등 출입 관계자는 재택근무와 시차출근 등을 실시하고 있다. 여야 지도부도 원내 당무 회의 등 일정을 순연했다.

대한민국 최고 입법기관이 잠시 멈춰선 가운데 더 큰 문제는 9월 정기국회부터 불거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현행 국회법상 회의를 개의할 수 있는 의사 정족 수는 재적 의원 300명 중 5분의 1인 60명이다. 안건 의결을 위해선 재적 의원 과반 출석이 전제돼야 한다. 이 경우 151명이 본회의장에 출석해야 한다.

투표 방법도 현행법상 원격 방식으로 대체할 수 없는 실정이다. 국회법 110·113조는 '국회의장은 표결할 안건의 제목과 표결 결과를 의장석에서 선포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같은 법 111조에 따르면 국회의원은 표결 시 회의장에 있지 않으면 표결에 참가할 수 없다.

특히 헌법 개정안 등을 표결할 때의 기명 투표와 국회 내 각종 선거·인사 안건 등을 표결할 때 실시하는 무기명 투표는 투표함을 폐쇄할 때까지 표결에 참가할 수 있다. 최소한의 인원이 기표대에 들어가면 되지만, 일반 안건은 의석에서 단말기로 투표하기 때문에 한 자리에 모일 수밖에 없다.

현재 '국회 코로나19 대응 태스크포스(TF·전담반)'가 상황별 대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법적 근거는 부족하다. 국회 사무처의 경우 각 의원실에 대한 온라인 화상 시스템(체제)을 구축하고 있지만, 이 역시 의원총회에 한한다. 이마저도 다음달 초에 작업이 끝날 전망이다.

비대면 회의·표결을 가능하도록 한다는 법안도 나왔지만, 이 역시 상임위에만 예외적으로 비대면 회의와 원격 표결을 허용한다.

이외에도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경우 감염병 확산 등으로 긴급한 상황 발생 시 의원이 의장 허락을 얻어 원격 출석이 가능하도록 한다는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조명희 미래통합당 의원은 국정감사·국정조사 때 참고인의 원격 출석을 허용하는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국회 업무 시스템은 원격 처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주요 업무 시스템 중 원격 사용이 가능한 것은 국회 메일과 행정부 자료요구 등이다. 핵심인 법안 발의 시스템과 입법지원 시스템, 비용추계 시스템 등은 외부에서 접속이 불가능하다. 외부에서 접속이 가능해도 해킹 등 보안 문제가 우려 사안이다. 지난 12일에도 자료 유출 시도로 의심되는 악성코드가 발견돼 사무처가 조치한 바 있다. 

다만 의원 각 사람이 헌법기관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감염 위험군에 노출된 국회의 한 자리에 묶어둘 수도 없는 상황이다. 최악의 경우 의원 집단 감염도 배제할 수 없다.

여야는 현재 2019회계연도 결산 심사를 위해 8월 임시국회 중이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소속 위원이 정성호 위원장을 포함해 50명에 달한다. 이미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제한 수를 채운 상황이다. 최근에는 각 부처 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종합정책질의와 부별심사도 진행했다. 정부 측 관계자 등을 최소화해도 현행으로는 방역 당국이 정한 조치도 지키기 어렵다.

결산 심사의 경우 여야 정쟁이나 이견이 다소 적다는 것을 고려하면 다음달 열리는 정기국회는 '입법부의 꽃'이라 불릴 정도로 다툼이 치열하다. 특히 국정감사와 내년도 예산안 처리는 국면까지 바꿀 수 있는 주요 사업이기 때문에 정부 요인과 각 행정부처 관계자가 대대적으로 국회를 찾는다. 이 때문에 정당 차원에서는 물론 대한민국 입법부의 원활한 가동을 위해 대안 마련이 절실한 실정이다.

해외의 경우 영국은 하원에서 코로나 사태 종식 때까지 한시적으로 원격 출석과 표결이 가능하도록 '병행의사절차'를 도입했다. 대정부 질의와 법안 발의·심사·의결 등에 있어서 출석 참여와 원격 참여를 모두 인정한다.

프랑스·캐나다·독일 하원 등은 여야 협의를 통해 의사정족수를 완화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하원에서 비대면 의정활동과 관련해 의사규칙 개정안이 나왔지만, 공화당 반대로 무산됐다. 다만 코로나19 확진 판정이나 자가격리 등으로 직접 투표를 할 수 없는 의원은 대리투표자를 지명할 수 있다.

bigstar@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