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런저런] 살릴까, 지나갈까 
[e-런저런] 살릴까, 지나갈까 
  • 신아일보
  • 승인 2020.08.13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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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 저녁, 가로등이 하나 둘 켜질 무렵 식후 산책에 나섰다. 그런데 두어 발 내디딜 즈음 한 모녀가 보였다. 

살려주자는 아이와 살려줘도 살아가기 어렵다는 아이 엄마의 대화가 들렸다. 

무슨 말일까. 

가까이 다가가니 아파트 단지 화단 구석에 갓 태어난 새끼 쥐가 꼬물꼬물 기어 다니고 있고 나무 뒤에는 새끼 쥐를 뚫어져라 응시하며 침을 흘리고 있는 길고양이의 날카로운 눈빛만이 보일 뿐.

생사의 기로에서 어쩔 수 없이 어미 쥐는 탈출한 듯 보였다. 어떻게 해야 하나, 나조차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엄마 왈 “어미 쥐도 없는데 새끼 쥐를 집에 데려가서 어쩌려고. 돌봐줄 수도 없고 어미 없이 살아가기도 어려워. 그리고 쥐는 병균이 많아서 집에 데려갈 수 없어”

아이 왈 “그래도 갓 태어난 아기인데 구해주자. 선생님이 어떤 생명이던 생명은 소중한 거라고 하셨어!”

옥신각신하던 모녀는 새끼 쥐는 놓아둔 채 엄마의 손에 이끌려 가던 길을 가버렸다. 울상으로 연신 뒤를 돌아보는 아이의 걱정스러운 눈빛에도 결국 새끼 쥐는 잡아먹히고 말았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얼마 전 SNS를 뜨겁게 달궜던 한 사연이 떠올랐다. 

수풀을 지나던 어린 사슴을 커다란 구렁이가 칭칭 감아 곧 잡아먹힐 위기에서 한 남자가 굵은 나뭇가지로 새 차게 구렁이의 몸체를 내리쳐 결국 사슴을 구해내는 동영상이 SNS를 통해 화제가 됐다. 

네티즌들은 양편으로 나뉘었다. 

동물의 세계에 인간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과 새끼 쥐를 구해주자는 아이처럼 그래도 한 생명의 죽음 앞에서 목숨을 구해 준 행동은 옳은 일이라는 의견이었다. 

이들 모두의 의견은 옳다. 누구 하나 잘못된 의견은 없다. 

약육강식의 메커니즘을 해치지 않아야 육식동물도 살아갈 수 있고 초식동물이 육식동물의 영양분이 돼야 우거진 수풀도 지켜나갈 수 있다. 또 어떤 생명이던 생명은 무엇보다 소중한 것도 맞다.

이 모든 의견들이 서로의 잘잘못만을 따지고 맹목적인 비난만을 쏟아내는 소모적 논쟁이 아닌 보다 더 나은 세상으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면 이 같은 논쟁조차 건강한 사회의 일면이다. 

아직 세상은 훈훈하다. 

/이상명 스마트미디어부 기자  

master@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