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당, 일부 막말 여전… 국민 피로도·실망 축적돼
다언삭궁(多言數窮), 말이 많으면 자주 곤란해진다는 뜻이다.
정치권의 언행이 여론의 공분을 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에선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문 사건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이라고 칭한 것과 진성준 의원의 부동산 대책 관련 발언이 도마에 올랐다. 미래통합당의 경우 정원석 비상대책위원이 박 전 시장 사건을 부적절하게 표현해 논란을 부르고 있다.
◇피해호소인→피해자… 수습 나선 與
먼저 민주당은 17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박 전 시장 고소인의 명칭을 '피해자'로 통일하기로 했다.
민주당은 앞서 박 전 시장 성추행 의혹과 피소 사실이 알려진 후 지금까지 고소인을 '피해 호소인'이라고 불렀다. 이해찬 대표는 지난 15일 이번 사건에 대해 "국민께 큰 실망을 드리고 행정 공백이 발생한 것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며 "'피해 호소인'이 겪는 고통에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이런 상황에 대해 민주당 대표로서 다시 한 번 통절한 사과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발언은 박 전 시장 성추행 사건에 더욱 불을 지폈다. 민주당이 그간 성추문 관련 고소인을 '피해자'라고 통칭하던 것과 달리 '피해 호소인'이라고 칭했기 때문이다. 앞서 민주당 여성 의원 일동도 '피해 호소인'이라는 말을 써 뭇매를 맞기도 했다.
한 시민단체는 거대 여당 수장의 '피해 호소인' 발언에 대해 피해자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발까지 했다.
이 대표의 발언은 야권은 물론 범여권과 당 안팎에서도 비난이 나왔고, 지도부 안에선 사과도 나왔다.
김해영 최고위원은 같은 날 '피해 호소인'이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 당 지도부로서 처음 사과했다. 김 최고위원은 "지금부터는 피해 호소인이 아닌 피해자라는 표현 사용이 적절하다"며 "피해자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당에선 향후 진상 규명을 포함해 피해자 보호를 위한 모든 노력을 다 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최고위원은 "이번 사건과 관련한 당의 일련의 대처 과정에서 피해자 보호에 부족한 점이 있었다"며 "책임있는 공당으로서, 약자 보호를 주요 가치로 삼는 정당에서 고인에 대한 추모와 피해자 보호라는 두 지점에서 일의 경중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이 대표는 앞서 박 전 시장 조문 후 취재 중이던 기자가 성추행 사건에 대한 당 차원 대응 여부를 묻자 "나쁜 자식 같으니라고"라고 말했다가 구설수에 올랐다. 한국기자협회는 이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진성준 자책골?… 野 "상식적으로 말했다"
최근 부동산 투기 재과열로 여권이 수습에 나선 가운데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을 맡고 있는 진 의원의 TV 토론회 언행도 야권에 꼬리를 잡혔다.
진 의원은 전날 토론 방송에 출연해 7·10 부동산 대책에 대해 "근복적 처방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녹화가 끝난 뒤 함께 출연했던 김현아 통합당 비상대책위원이 "(집값이) 떨어지는 게 국가 경제에 너무 부담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 막 떨어뜨릴 수 없다"고 말하자, 진 의원은 "그렇게 해도 안 떨어질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김 비대위원은 "여당 국토교통위원이 그렇게 얘기하면 국민은 어떻게 하느냐"고 지적했고, 진 의원은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진 의원은 이번 논란에 대해 보도자료를 내고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대책의 발목을 잡으려는 집값 하락론자의 인식과 주장에 대한 반박"이라며 "부동산 투기에 대한 규제를 막으려 해선 안 된다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를 두고 "과거 사례를 보면 결국 여러 가지를 해 봐여 안 내려간다는 것을 (진 의원이) 상식적으로 말한 것"이라며 "솔직하게 얘기했다"고 평가했다.
같은 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진 의원을 두고 "문재인 정권 청와대에서 근무하고 서울시 부시장도 했던 분"이라며 "그래서 진심을 얘기했다고 본다"고 일침을 가했다.
주 원내대표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을 향해선 "22가지 정책을 썼지만, 집값을 못잡고 있지 않느냐"며 "그런데 본인은 정책이 다 제대로 작동되고 있다고 한다. 잘 작동되는데 집값이 폭등하고 있다면 당장 그만둬야 한다"고 공세를 퍼부었다. 앞서 김 장관은 '부동산 정책이 다 잘 작동되고 있다'는 취지로 말해 여론과 야권의 질타가 쏟아졌다.
주 원내대표는 "김 장관 스스로 그만두지 않으면 대통령이 해임해야 한다"며 "(진 의원 발언은) 이 정권의 무능과 이율배반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말"이라고 전했다.
◇말하면 꼬리 잡히는 추미애… 대여공세 빌미
검찰과 갈등했던 추미애 법무부 장관도 말 때문에 야당의 공격 대상에 올랐다.
추 장관은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연가를 내고 산사로 간 첫날 여기저기서 제 소재를 탐색하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며 '수사지휘권' 파동 당시 언론 보도를 비난했다.
추 장관은 그러면서 "관음증 중독이 선을 넘었다"며 "남성 장관이라면 꿋꿋이 업무를 수행하는 장관에게 '사진은 누가 찍었나, 최순실이 있다, 문고리가 있다, 발끈한다' 등 어이 없는 제목을 붙이며 우롱했겠느냐"고 주장했다.
김은혜 통합당 대변인은 추 장관이 언론을 향해 '여성 장관에 대한 관음 증세가 심각하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박 전 시장 사건 피해 여성에 대해선 침묵하면서 난데 없이 '여성 장관'과 '관음을 피해 호소'에 나섰다"며 "불리하면 여성, 유리하면 장관"이라고 질타했다.
통합당은 추 장관이 지난달 29일 윤석열 검찰총장을 겨냥해 '코로나 바이러스 신천지 수사에 검찰이 자신의 압수수색 지시를 듣지 않았다'고 한 것도 정조준했다.
조수진 의원은 "추 장관이 코로나19 장기화 사태도 윤 총장 탓이라고 한다"며 "하다 하다 이젠 별 걸 다 한다"고 비꼬기도 했다. 이어 "조선시대 백성이 창궐하는 역병에 나랏님 탓했다는 일은 들어봤지만, 사헌부의 수장 대사헌 탓했다는 얘는 못들어봤다"며 "윤석열은 검찰총장이지, 대통령도, 보건복지부 장관도 아니다"고 지적했다.
지난 1일에는 하태경 통합당 의원이 추 장관이 민주당 초선 의원 포럼에서 윤 총장을 힐난한 것을 언급하며 "추 장관이 윤 총장을 때리면서 키워줘 마치 '윤석열 선거대책본부장'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추 장관은 당시 '내 지시 절반을 잘라먹었다, 장관 지휘를 겸허히 들으면 좋게 지나갈 일을 새삼 지휘랍시고 일을 더 꼬이게 만들어서' 등의 발언으로 검찰-언론 유착 의혹 사건을 둔 윤 총장 결정에 불만을 표출한 바 있다.
◇당권주자가 말하는 충청권 '밥그릇'
민주당 전국대의원대회(전당대회) 당대표 출마를 선언한 김부겸 전 의원은 'KTX 세종역 설치' 옹호 발언에 대해 사과했다.
김 전 의원은 전날 충청북도 도청에서 취재진으로부터 KTX 세종역 신설 관련 질문을 받자 "역사를 만드는 것까지는 양해해야 한다고 본다"며 "세종에서 근무해보니 교통 여건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종역 설치로) KTX 오송역이 제 역할을 못 할 것에 대한 우려는 해결 방법이 있을 것"이라며 "내 지역 밥그릇을 뺏긴다는 오해는 하지 않아도 된다고 본다"고 부연했다.
세종역 신설은 세종시와 충북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현안이다. 이같은 발언은 지역에서는 비판 여론이 쏟아졌고, 김 전 의원은 "대단히 부적절하고 충북도민에게 상처를 드리는 표현이었다"며 "평소 대전·세종·충청이 중원의 광역 경제권으로 상생·협력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고 무마에 나섰다.
◇막말 대명사 여전히 못 벗어난 통합당
통합당은 17일 긴급 비대위원회의를 소집해 '섹스 스캔들(부도덕 사건)'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정원석 비대위원에게 경고를 내리고, 활동 정지 2개월 권고를 결정했다.
당내 청년 조직 개혁을 위해 '한국식 영 유니온 준비위원회'를 주도하고 있는 정 비대위원은 전날 박 전 시장 사건을 '섹스 스캔들'이라 지칭해 논란을 샀다.
앞서 통합당에선 21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차명진 후보자의 세월호 천막 관련 막말로 물의를 빚었다. 통합당 내 막말은 4·15 총선 참패 원인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배준영 대변인에 따르면 정 비대위원은 회의 직후 유선을 통해 조치를 통보받았고, "자성 차원에서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밝혔다.
[신아일보] 석대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