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 판문점 정상회담서 北에 비핵화 압박…김정은, 동의해”
“한국 정부 판문점 정상회담서 北에 비핵화 압박…김정은, 동의해”
  • 이상명 기자
  • 승인 2020.06.22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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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볼턴 회고록 “북미 비핵화 한국의 창조물”로 지칭
문 대통령 “북한의 혜택은 비핵화 완수 후 받게 될 것”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오른쪽부터),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6월30일 오후 판문점 남측 자유의 집 앞에서 만나 얘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한국이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에게 비핵화를 요구했고, 김정은이 동의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는 대북전단 살포 문제로 경색된 현재의 남북 상황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23일(현지시간)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출간 예정인 자신의 회고록 ‘그것이 일어난 방’에서 4·27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당시 우리 정부가 김정은에게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에 동의하도록 압박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같은 해 6월12일 첫 북미 정상회담을 두달 여 앞둔 시점으로, 그는 익히 알려진 바와 달리 북미 비핵화 외교를 ‘한국의 창조물’로 지칭했다고 연합뉴스가 22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볼턴은 대북제재 해제 전 ‘북한의 선 비핵화’를 의미하는 ‘리비아 모델’을 꾸준히 주장할 정도로 대북 강경론을 대표하는 인물로 한국과 북한, 미국 사이의 협상 과정을 이번 회고록을 통해 자세히 기술했다.  

회고록 속 볼턴은 당시 우리 정부의 외교적 접근법에 부정적인 인식이었음을 곳곳에서 드러냈다.

볼턴은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가까워 올수록 낙담하고, 회의적으로 됐다”며 “북한의 시간끌기에 말려들거나 ‘위험한 양보’를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회담까지 이어진다 해도 김정은에게 정당성을 제공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 모든 외교적 판당고(스페인 춤)가 한국의 창조물”이라며 “북한이나 미국의 진지한 전략보다는 한국의 통일 어젠다에 더 많이 관련돼 있다”고 적었다. 

특히 ‘북한 비핵화’와 미국의 근본적인 국익과는 어떠한 연관도 없다고 평가한 점은 눈길을 끈다. 

볼턴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방미(세 차례 워싱턴 방문)를 비롯한 협의내용이나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통화 내용도 소개했다.

회고록에 따르면 볼턴은 2018년 4월12일 정 실장이 워싱턴에 왔을 때 4월27일 시행될 남북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한미일 균열을 유도할 수 없도록 비핵화에 대한 논의를 하지말 것을 당부했다. 

볼턴은 정 실장이 같은 달 24일 남북공동선언문은 2쪽짜리라고 전했다며 따라서 비핵화 논의는 구체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에 안심했다고 기술했다. 

실제로 ‘4·27 남북공동선언’에 비핵화 내용이 비교적 온건하게 담겨 있었다고 볼턴은 평가했다.

남북 정상회담 이튿날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화해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약속하며 비핵화를 선언했다고 전했지만 볼턴은 북한의 또다른 거짓말이라고 판단했다. 

또 문 대통령은 북미정상회담 장소로 판문점에서 남북미 3자 회담 직후 북미 정상이 회담할 것을 요청했지만 볼턴은 문 대통령의 이 같은 모습은 그저 ‘사진찍기용’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특히 볼턴은 문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1년 내 비핵화를 묻자 김정은이 알았다며 동의했다고 주장했다. 또 트럼프와 통화하던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강한 리더십을 칭찬하기도 했다고 술회했다. 

볼턴은 또한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노벨상 수상 후보’로 추천하겠다고 말했다고 적었다. 정확한 시점을 기술하진 않았지만 아마도 4월 남북정상회담 이후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회고록 곳곳에서 볼턴은 한국이 김정은에게 비핵화에 동의하라고 압박했고, 김정은이 이에 응하는 것어럼 보였다고 적었다. 

또 문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트럼프 대통령과 ‘빅 딜’ 과정에 다다르면 구체적인 것은 실무 수준에서 논의될 수 있다”고 촉구했다면서 “북한의 혜택은 비핵화를 완수한 뒤에야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볼턴은 주장했다.  

특히 김정은이 이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는 사실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볼턴은 북미정상회담 장소로 ‘싱가포르’를 선택하게 된 과정도 소개했다. 

볼턴은 김정은이 줄곧 평양 혹은 판문점이 만남의 장소가 되기를 희망했지만 폼페이오 장관과 볼턴은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고 생각했다고 적었다. 평양 대신 폼페이오 장관은 제네바나 싱가포르를 물망에 올려 놨지만 김정은은 비행기 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기술했다. 

김정은은 평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가는 것을 원치 않았고 이를 이유로 볼턴은 북미회담이 불발되기를 기대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 다음날인 4월28일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화해 김정은이 회담 장소로 싱가포르를 선호한다고 말했고, 결국 장소 문제가 해결됐다고 볼턴은 적었다. 

일본이 북한의 ‘행동 대 행동’ 접근법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가졌다는 사실도 회고록 곳곳에 등장한다. 

4월12일 만났던 당시 일본 국가안보국장 야치 쇼타로는 우리 정부의 생각과 크게 달랐고 행동대 행동‘ 전략에 반대하는 볼턴의 생각과 매우 비슷했다고 술회했다.

또 야치는 5월4일 회동 때도 볼턴에게 북한의 ‘행동 대 행동’ 접근법에 속아서는 안 된다고 재차 강조했다고 볼턴은 주장했다. 

vietnam1@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