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걸핏하면 전면 재검토, 지긋한 탁상행정
[기자수첩] 걸핏하면 전면 재검토, 지긋한 탁상행정
  • 김소희 기자
  • 승인 2020.06.22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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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당분간 ‘현실을 모르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란 질타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전망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정부는 최근 한 달 새만 ‘질병관리본부 청 승격에 대한 개정안의 전면 재검토’와 ‘재포장금지법 시행에 대한 개정안의 전면 재검토’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는 6월3일 질병관리본부의 청 승격과 국립보건연구원의 보건복지부 이관을 골자로 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와 국민 모두 감염병과 질병을 관리하는 데 필요한 연구 조직·기능을 상실시킨 ‘무늬만 승격’이라고 비판했다. 질병관리본부의 정은경 본부장 역시 “질병관리청에도 연구 기능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은 행안부 발표 2일 후인 6월5일, 질병관리청 승격 안건의 전면 재검토를 지시했다. 그리고 6월15일, 당정청은 국립보건연구원을 존치한 채 질병관리청으로 승격하는 안건을 확정했다.

하지만 정부는 단 며칠새 이 같은 전철을 망각한 것인지, 다시 한 번 현실과 동떨어진 개정안을 내놓았다.

환경부는 오는 7월1일부터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데 따라, 지난 6월18일 하위 법령인 ‘제품의 포장재질·포장방법에 관한 기준 등에 관한 규칙’ 개정안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이 가이드라인은 과도한 접착제·플라스틱·포장박스 등의 사용을 막기 위해 묶음 할인상품을 금지하는 것이 골자다. 가이드라인이 시행되면 낱개 상품 대비 평균 25%가량 저렴해 식품기업이나 유통업체, 소비자 모두 선호하는 마케팅 방식 중 하나인 묶음 할인이 금지된다.

전문가들이나 관련업계는 정상적인 경제 행위마저 규제하는 세계 첫 사례라고 비판했다. 국민도 규제가 미칠 영향력 등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하지 않은 탁상행정이라고 강력 규탄했다.

환경부는 계속되는 지적에 ‘비닐 소비를 줄이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라면서도, 재포장금지법의 전면 재검토 후 새로운 규제 시행시기와 의견 수렴 절차 등을 22일에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여론을 의식해 동전 뒤집듯 정책을 바꿀 것이었다면 정부는 처음부터 각계각층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한 후 정책을 내놨어야 했다. 특히나 오랜 시간 산업현장에서 관행처럼 시행돼 왔던 사안에 대한 정책이라면 더욱 신중했어야 했다.

탁상에만 앉아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정책을 짜는 안이함은 결국 정부 정책 추진에 오점만 남긴 꼴이 됐다.

정부는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앞으로는 각 분야의 전문가와 현장의 목소리를 최대한 듣고 조율해 합의된 사항들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그간의 문제를 곱씹어 더 이상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길 바란다.

ksh333@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