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부정적인 면 중 ‘냄비근성’을 지칭하는 이들이 많다. 금방 끓고 금방 식는 냄비와 그 성질이 맞닿아있다는 의미다. 한국인의 냄비근성은 특히 ‘유행’을 만났을 때 그 특성이 잘 드러나고 있다. 노스페이스 검정 패딩 점퍼나 롱패딩이 유행할 때 한국인은 학교나 직장에서 똑같은 패션을 자주 마주하곤 했다. 비단 패션뿐 아니라 창업 시장 역시 유행이 빠르게 왔다 가는 분야다. 특히 프랜차이즈 창업 시장은 그 속도가 더욱 빠르다. 하지만 유행을 좇아 함부로 창업을 했다간 불길로 뛰어드는 불나방의 처지가 될 수 있다.
그간 대한민국의 프랜차이즈 창업 시장에서 강렬하게 등장했다가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진 브랜드들은 헤아릴 수 없다. 대만에서 건너온 대왕 카스텔라, 대만 빙수, 벌집삼겹살, 벌집 아이스크림, 찜닭, 와인 숙성 삼겹살 등이 있다. 이 브랜드들은 한 때 줄을 서서 기다리며 먹어야 할 만큼 전국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브랜드다. 안동찜닭의 경우, 2000년대에는 한 건물에 한 개의 매장이 들어설 만큼 전국적인 창업 열풍을 이끌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 수많은 인기 브랜드가 왜 한 순간에 사라져 버린 것 일까. 금방 타올랐다가 금세 사그라지는 한국인의 냄비 성질은 물론이거니와 동의 없는 무분별한 벤치마킹이 불러온 비극이었다.
외국 교포들 사이에서 이런 속설이 있다고 한다. “중국인은 이웃이 낸 점포가 잘 되면 모두 힘을 합쳐 그 점포를 크게 세워 막대한 부를 축적하지만, 한국인은 이웃이 낸 점포가 잘 되면 똑같은 브랜드를 론칭해 모두 죽는 게임을 한다”라는 속설이다. 가슴 아픈 이야기이지만 맞는 말이기도 하다.
해외에 있는 유명 맛집들은 오래도록 운영한다. 맛과 점포 운영 노하우에 그 비밀이 있겠지만, 그 맛집에 대한 벤치마킹이 무분별하게 이뤄지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에 반해 한국은 한 점포가 잘되면, 3개월이면 똑같은 것이 등장한다. 무분별한 벤치마킹이 일어나 결국은 획기적인 창업아이템이 지리멸렬한 창업아이템이 되는 것이다. 이런 브랜드들은 전국민적 유행을 타지만, 개인이 3번 이상 먹으면 가지 않는다. 질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창업자들은 이 사실을 간과하며 유행을 쫓아 창업을 원한다.
최근에도 이런 유행 아이템이 전국민적인 인기를 끈 적이 있다. 핫도그, 차돌박이, 마라탕 등이다. 이 창업아이템을 개발하고 맛을 보완하며 완성작을 세상에 내놓았는데, 3개월이면 그 아이템은 전국적인 흔한 아이템이 되어버린다. 이런 상황에서 그 누가 막대한 시간과 돈을 들여 새로운 창업 아이템을 개발하려 하겠는가. 프랜차이즈 시장에서 벌어지는 무분별한 벤치마킹은 창업자 뿐 아니라 프랜차이즈 본사를 생각하는 이들의 희망과 열정을 꺾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소비 트렌드의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고, 자영업자와 프랜차이즈 기업의 대응 전략도 그에 맞게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강병오 중앙대 산업창업대학원 겸임교수는 코로나19 이후 초저가 ‘가성비’ 열풍이 더 강화될 것이라고 말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가처분 소득이 줄어든 소비자들의 시선이 초저가 상품으로 쏠리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사실 프랜차이즈 시장서 이 같은 ‘가성비 메뉴 열풍’은 몇 년 전부터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전망도 무분별한 벤치마킹으로 그 결과를 장담하기는 힘들다. 한국 외식 시장에서 5년 이상 브랜드를 존속시키기 어려운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유행을 좇기 때문이다. 예전 골목을 점령했던 찜닭과 불닭, 와인삼겹살, 스몰비어, 대만 카스텔라 브랜드는 이제 거리에서 흔하게 찾기 어려워졌다. 한 프랜차이즈 전문컨설팅 기업의 통계에 따르면 외식업계에서 5년 이상 존속하는 프랜차이즈 브랜드 수는 약 30% 정도에 불과하다.
벤치마킹의 나라 한국에서 냄비근성의 한국인을 상대로 아주 흔한 아이템으로 창업을 한다면 그것이 과연 핑크빛 미래를 보장할 수 있을까. 투자형이 아닌 생계형 창업을 고려하고 있는 당신이라면 부디 한 철 장사하는 유행 창업 아이템을 좇지 말고 글로벌한 창업 흐름과 함께 외식업계에서 오랜 시간 살아남은 브랜드를 꼼꼼하게 살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