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수화상병, 전년보다 확산세 빨라…축구장 245개 넓이
과수화상병, 전년보다 확산세 빨라…축구장 245개 넓이
  • 박성은 기자
  • 승인 2020.06.09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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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구제역' 불릴 만큼 사과·배 중심 큰 피해…고온다습 기후 발생빈도↑
6월8일 현재 290농가 확진 전년比 배 급증, 위기단계 주의→경계 상향조정
강원지역 어느 과수원에서의 과수화상병 발생 모습. (제공=농촌진흥청)
강원지역 어느 과수원에서의 과수화상병 발생 모습. (제공=농촌진흥청)

한 번 발생하면 치료가 불가능해 과수농가에게 치명적인 ‘과수화상병’ 확산 속도가 빨라지면서, 관련 피해는 이미 지난해를 넘어선 상황이다. 지금껏 발생하지 않았던 전라북도에서도 과수화상병 확진 판정이 나오면서, 그간 경기·충청에 집중된 발생 범위가 더욱 확대될 우려는 높아졌다.

정부는 과수화상병 위기단계를 주의에서 경계로 상향 조정하고, 특별관리구역을 중심으로 방제 역량을 집중해 확산세를 최대한 막겠다는 방침이다.  

9일 농촌진흥청과 관련업계에 따르면 올해 과수화상병 발생 상황은 심각한 수준이다. 

올 6월8일 오후 5시 기준 충청북도 충주와 제천, 경기도 안성 등 사과 주산지를 중심으로 290곳의 과수원이 과수화상병 확진 판정을 받았다. 피해면적만 175헥타르(㏊, 175만제곱미터·㎡)다. 이는 국제 표준 축구장 면적(7140㎡)의 245배에 이른다. 

특히 5월에 82개 농장이 확진 판정을 받았는데, 전년 동기(9곳)와 비교해 8배가 넘는 수치다. 또 6월1일부터 8일까지는 무려 203개 농장에 이른다. 약 40여일간 285곳의 농장이 과수화상병을 겪으면서, 가장 발생건수가 많았던 지난해의 188건을 뛰어넘어 사상 최대의 피해로 번지고 있는 모습이다.  

이처럼 과수화상병이 급격하게 확산된 이유에 대해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최근 내린 비와 25~27℃ 온도 등 고온다습한 기후 때문에 예년보다 발생건수가 증가한 것 같다”고 밝혔다.

과수화상병은 세균에 의해 전파되는 ‘세균성 병해’의 일종이다. 사과·배와 같은 장미과 식물을 중심으로 기온이 높아지는 5~8월에 주로 발생한다. 잎·꽃·가지 등에 불에 데인 듯 말라죽어 마치 화상을 입은 것처럼 검게 변하는 증상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다른 식물 병해와 달리 한번 발생하면 치료가 불가능하고, 전 세계적으로도 원인규명이 잘 되지 않아 관련 치료법이나 예방법은 현재까지 없다. 때문에 확진 판정을 받으면 과수원을 폐원해야 한다. 또, 발생지역 과수를 매몰하고 3년간 과수 재배를 제한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점이 소·돼지 등 우제류 가축에 발생하는 구제역과 비슷하다고 해서 과일 구제역이라는 악명을 얻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5년 5월 안성에서 처음으로 과수화상병이 확인된 이후 지난해까지 경기와 충청, 강원지역 중심으로 매년 발생되며 과수농가에 많은 피해를 주고 있다. 

하지만 올해에는 전북 익산의 한 사과 과수원에서도 과수화상병이 발생하면서, 발병 범위가 점차 남부지역까지 넓어진 상황이다. 이에 따라 정부와 관련업계는 행여나 사과 핵심 주산지로 꼽히는 경상북도까지 확산되는 건 아닌지 노심초사하고 있다.

실제 지난달 말 사과 주산지로 꼽히는 경북 영주의 사과재배 농가에서 과수화상병 의심 증상이 접수됐는데, 다행스럽게 과수화상병이 아닌 ‘과수 가지 검은 마름병’으로 확인됐다.

이에 농진청은 그간 발생하지 않았던 지역에서도 과수화상병이 발생하고 의심신고가 접수되는 등 상황이 악화되자, ‘병해충 위기단계별 대응조치’에 의거해 이달부터 위기경보 단계를 기존 ‘주의’에서 ‘경계’로 상향 조정하고 방역관리를 한층 강화했다.

위기단계가 상향조정되면서, 발병 시·군 중심으로 설치·운영된 과수화상병 대책상황실을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각 광역단체와 사과·배 주산지 시·군, 발생 인접 시·군으로 확대 설치했다. 집중발생지역의 경우 중앙정부에서 전문가를 파견해 현장조사를 추진 중이다. 

특히 이달 19일까지 아산·공주·청주·괴산·문경·예천·영주·봉화·세종 등 특별관리구역 9개 시·군의 사과·배 농장을 대상으로 예찰을 실시한다. 

농진청은 긴급한 상황을 고려해 확진 절차도 간소화했다.

종전에는 과수화상병 발생 시 진단키트를 이용한 간이검사 후 농촌진흥청으로 이송 후, 정밀검사를 통해 확진 유무를 발표했다. 하지만 충주 등 발병이 집중된 지역에서 시급한 방제가 필요한 경우, 농진청의 식물방제관이 현장에서 재진단해 양성일 경우 즉시 확진 판정을 할 수 있도록 조치다.

김경규 농진청장은 “세계적으로도 방제기술이나 방제약제가 개발되지 않은 과수화상병으로 피해를 입은 과수농가의 심정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면서도 “추가 확산을 막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며, 현재 진행 중인 방제기술 개발에 가용 가능한 모든 연구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parkse@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