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질본 승격, 정책 파편화 우려된다
[기자수첩] 질본 승격, 정책 파편화 우려된다
  • 김소희 기자
  • 승인 2020.06.08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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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좀처럼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질병관리본부는 이젠 없어선 안 될 곳이 됐다.

질병관리본부는 국내 첫 번째 코로나19 환자가 등장한 1월21일부터 사태의 중심에서 중앙방역대책본부를 총괄해왔다. 특히 정은경 본부장은 코로나19 사태 전면에 나서 코로나19 확산 방지와 사태 종식을 위해 불철주야 본부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정부는 정 본부장과 질병관리본부가 영웅이란 칭송과 함께 국민의 지지를 받자, 질병관리본부를 ‘질병관리청’으로 격상하고 초대 청장으로 정 본부장을 앉히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정부는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인 질병관리본부를 하나의 독립된 중앙행정기관으로 승격시키고 인사권과 예산권을 부여하겠단 계획이다.

하지만 실상은 감염병과 질병을 관리하는 데 필요한 연구 조직·기능 즉, 국립보건연구원을 보건복지부로 이관해버린 껍데기뿐인 승격이었다.

‘재주는 원숭이가 부리고 돈은 주인이 가져간다’는 속담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온갖 고생은 질병관리본부가 다 하고 있는데, 공은 보건복지부가 날치기한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 됐다.

실제 정부는 이달 3일 행정안전부의 질병관리청 승격을 포함한 정부조직법 개정안 입법예고 후, 전문가는 물론 국민으로부터 질병관리청의 생색 승격을 두고 ‘알맹이 없는 무늬만 승격’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이튿날인 4일 청와대 국민청원엔 “국립보건연구원과 국립감염병연구소는 질병관리청 산하에 있어야 감염병 대비 역량 강화에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질병관리청이 감염병 정책과 방역기능, 감염병 연구기능 전체를 아우르는 ‘K-방역’의 주역이 될 수 있도록 확실히 밀어줘야 한다”는 내용의 청원이 올라왔다.

정 본부장 역시 이날 중앙방역대책본부 정례 브리핑에서 “질병관리본부를 중앙행정기관으로 독립시키는 이유는 감염병과 공중보건위기 대응에서 전문성과 독립성을 가지고 더 잘하란 의미로 이해한다”면서도 “질병관리청에도 연구 기능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상황이 이러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5일 질병관리청 승격하는 안건을 전면 재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행정예고 후 단 2일 만에 동전 뒤집듯 개편안 자체가 재검토 대상이 됐다는 건 정부가 부처를 관리하고 조직을 개편하는 데 있어 신중하지 못했으며, 무능했다는 것을 방증한다.

정부는 이제라도 좀 더 효율적인 정책 시행을 위한 전문성을 갖춘 조직 구성에 집중해야 한다. 차라리 그간 전문가들이 요구해왔던 것처럼 보건부와 복지부를 나누고, 보건부에 국민건강과 공중보건을 위한 기능을 몰아주는 편이 해법이다.

ksh333@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