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뗄 수 없는 관계 '정치'와 '언론'... '기레기' 역사와 보도 개선 방향
[창간특집] 뗄 수 없는 관계 '정치'와 '언론'... '기레기' 역사와 보도 개선 방향
  • 석대성 기자
  • 승인 2020.06.0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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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SF "韓 언론자유지수 세계 42위"… 코로나19로 저널리즘 위기 확산
韓, 군사정권서 '가짜뉴스' 본격화… 언론, '정쟁 개입'으로 신뢰 잃어
정치권 '사실보도' 주문… 언론학계 "보도준칙 문화 자리 잡아야 개선"
지난 4월 16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화랑유원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6주기 기억식'에서 참석자들이 눈물을 닦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4월 16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화랑유원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6주기 기억식'에서 참석자들이 눈물을 닦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 당시 탑승자 전원 구조 속보는 뼈아픈 오보였다. 그날 이후 기자들에겐 '기레기'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국제 언론감시단체 국경없는기자회(RSF)가 평가한 올해 한국의 '언론자유지수'는 세계 42위다. 지난해 41위에서 한 계단 떨어졌다. 언론의 총체적 위기를 빚어낸 권위주의 정권의 공격으로 인한 지정학적 위기, 양극화와 억압적 정책으로 인한 민주적 위기, 민주적 보장의 결여로 인한 기술적 위기, 양질의 저널리즘(사실보도)을 파괴하는 경제적 위기, 의심과 증오로 인한 언론 신뢰의 위기 등 5가지를 원인으로 꼽았다.

RSF는 여기에 더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세계적 공중보건 위기까지 더해졌다고 분석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언론의 자유를 위협하고 전세계 언론에 닥친 위기는 더욱 심화할 것이고, 다가올 10년이 저널리즘의 미래를 좌우할 시험대가 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언론은 정보 전달로 여론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준다. 입법·사법·행정의 뒤를 이은 제4의 권력으로 비유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현대인은 직접 경험보단 매체를 통해 사회가 돌아가는 것을 알고 사고하고, 이를 고리로 세상과 소통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대중매체를 운영하는 사람의 시각도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중에게 알리는 최종 관문에 선 보도에 객관적 시선이 들어가고, 판단에 따라 주관적으로 인식하는 '중요한 내용'이 걸러지기도 한다. '기레기(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라는 신조어도 여기서 나온다.

◇'권력 다툼'에 개입한 언론… '기자 영입'에 나선 정치

시대와 나라를 막론하고 언론과 권력은 늘 긴장 관계를 유지하며 상호 불편한 논쟁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사람을 선동하고 움직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언론 장악'이기 때문에 권력자나 독재자의 집권 유지 필수 요소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언론과 권력의 관계는 '수난과 투쟁'에 가깝다. 과거 일본제국의 언론 견제는 식민지시대라는 상황상 '장악'이 아닌 '탄압'이었다. 권력의 '보도 통제'와 언론의 '여론 몰이'는 해방 후부터 막이 오른다.

이승만 정부는 1959년 4월 30일 야당 신문으로 불리던 가톨릭 재단 소유 경향신문에 대해 군정법령 88호에 따라 폐간 명령을 내린다. 오보·선동 등 5가지가 이유였다. 이후 1960년 4·19 혁명이 일어났고, 대법원은 경향신문에 대한 '발행허가 정지의 행정처분 집행 정지'를 결정했다. 이를 두고 '독재 대 민주·언론'의 싸움이었다는 인식도 있지만, 일부 역사가는 우남 이승만 계열과 도산 안창호 계파, 인촌 김성수 세력 간 극한 대립에 언론이 개입한 것으로 평가한다.

4·19 후 자유당이 흔들리면서 주도권을 잡은 민주당 정권은 자유방임 언론정책을 채택한다. 자유당의 언론 정책에 대한 반작용과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공헌한 민주투사로서 언론이란 국민적 여망이 높았던 당시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발행의 자유를 보장하자 전국 각지에선 신문·잡지·통신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부작용이 나타난다. 사회가 수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언론이 범람했다. 이와 함께 정부 부재로 행정력이 약화되고 사회가 무질서해진 틈을 타 사이비 언론도 난무하기에 이른다.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언론사의 일제정비를 단행하고 구조 개편에 나선다. 이때부터는 정치권의 언론계 인사 영입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일례로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당시 동아일보 기사로서 민정 이양 관련 기사를 쓴 이만섭 전 국회의장(1932~2015)을 영입했고, 이 전 의장은 1963년 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전국구로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청와대 대변인직 등에 언론인을 영입하는 것도 관례로 자리잡았다.

◇'가짜 뉴스' 시작과 발호… 5·18 광주와 4·16 세월호

여론의 '기레기' 질책은 5공화국과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때부터 시작한다. 이 당시 언론은 광주 현장에 있었지만 무기력했고, 남겨진 기록은 통제됐다. 신군부의 언론 통제도 있었지만, 언론이 국민 신뢰를 잃은 원인 중 하나는 '사실 확인 없는 보도'였다. 이는 '가짜 뉴스'의 뿌리가 되기도 했다. 언론은 이희성 당시 계엄사령관의 특별담화문을 그대로 받아 썼고, 말 그대로 광주 사태에 대한 사실 확인은 없었다. 전두환 정권은 언론을 왜곡 도구로 사용하면서 광주에 대한 '폭도 프레임(관념)'을 완성한다.

군사정권이 물러난 1987년 이후 한국 언론은 국가로부터 가장 자유로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이젠 자본에 종속되기 시작했다. 미디어 시장의 변화로 언론은 무한 시장 경쟁 속으로 빠졌고, 언론 권력 역시 전통적 미디어는 약해지고 플랫폼 자본 권력이 성장했다. 이 과정에선 속보 경쟁과 취재 경쟁이 더욱 심화하기 시작한다.

'기레기'라는 단어는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직후 등장했다. 언론은 사고 당시 중앙안전대책본부와 교육청, 해양경찰, 경기교육청 대책반 등의 자료와 발표를 근거로 검증하지 않고 보도하면서 수학여행을 떠났던 단원고등학교 학생 전원을 구조했다고 전달한다. 이같은 정부 발표 인용은 오랫동안 관행화됐고, 언론은 5·18 때와 같은 우를 범하게 된다. 이후 사태가 심상치 않자 언론은 현장으로 내려가 밤낮없이 취재 경쟁을 벌인다. 그 과정에서는 '아니면 말고' 방식의 과장·허위 보도도 적잖게 나왔다. 오보는 오보를 낳고, 과장 보도는 본질을 훼손하는 부작용을 낳으면서 망가진 저널리즘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국민은 그때부터 허위 사실과 과장된 기사로 저널리즘의 수준을 떨어뜨린 기자를 '기레기'라고 불렀다.

지난달 2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 앞에서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등이 연 '80년 광주항쟁 진실보도 탄압ㆍ강제해직 40년, 전두환 규탄 및 사죄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5ㆍ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밝히고 국민 앞에 석고 대죄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2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 앞에서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등이 연 '80년 광주항쟁 진실보도 탄압ㆍ강제해직 40년, 전두환 규탄 및 사죄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5ㆍ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밝히고 국민 앞에 석고 대죄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총선 후 "언론개혁" 목소리… 정치권이 보는 '사실보도'

권위주의 시대에 한국 언론은 '관제보도' 오명을 얻으며 권력의 통제 아래에서 형극의 길을 걸었다. 동시에 언론 역시 보수-진보 진영으로 스스로 쪼개졌고, 이를 통한 국민 분열은 여전히 야기되고 있다. 언론이 사회적 의제를 설정하고 발언하는 과정에선 가치와 지향이 담긴다. 박근혜 정부에선 언론 통제가 이뤄졌다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에는 언론이 이념 대립을 심화시키는 현상이 나타났다.

더욱이 지상파와 신문으로 대변되던 언론 시장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인터넷 도입과 케이블(유선) 방송으로 영역이 넓어졌고, 2000년대에 들어선 위성방송, IPTV(초고속 인터넷망 이용 양방향 TV), 스마트폰 보급 등이 떠오르면서 급격하게 변화했다. 인터넷과 스마트 미디어를 기반으로 시민이 콘텐츠를 제작하는 시대로 진화하면서 '가짜 뉴스'는 더욱 판을 치고 있는 실정이다.

진영 간 대치전선이 확대되자 정치권, 특히 범여권은 언론에 압력을 넣는 모양새다. 열린민주당은 공약 중 하나로 '언론개혁'을 내걸었고, 최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역시 당내 사안과 관련해 "여러 가지 언론 보도를 보면서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며 '개혁'을 명목으로 21대 국회에서의 언론 손보기를 가시화하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최근에 이뤄지고 있는 보도는 또 하나의 새로운 현상이라 볼 수 있다"며 "이런 새로운 현상이 무분별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을 견제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힐난하기도 했다.

언론에 가장 민감한 정치권은 '사실에 기반한 보도'를 요하고 있다. 보도에 대한 정치권 주문은 여야 모두 같은 의견이다. 20대 국회에서 민주당 대변인으로 활동했던 이해식 의원은 <신아일보>와의 대화에서 "대변인 활동 당시 가장 심각하게 생각했던 것은 모든 언론이 일색일 수는 없겠지만, 사실에 기반해 기사를 써야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를 느꼈다"며 "언론이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사실이 아닌 것을 근거로 하나의 정치 논리를 만든다는 게 가장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하나의 정파를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가짜 뉴스를 쏟아내는 게 안타까웠다"며 "언론사와 언론인 스스로가 사실을 기반해 기사를 쓴다는 하나의 확고부동한 원칙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책임 소재에 대한 명확성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20대 국회에서부터 미래통합당 상근부대변인 등으로 활동하고 있는 장능인 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은 언론 자유주의를 지향하면서도 "책임 소재가 모호한 기사에 대해선 팩트(사실)가 잘못돼도 바꿀 방법이 없다는 것이 문제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장 전 위원은 "정치권은 언론과의 접촉이 가깝지만, 일반인의 경우 그런 부분에 있어 이의를 제기하는데 상당히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오보에 대해선 신속히 수정이 가능한 프로세스(체계)를 갖췄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내기도 했다.

지난달 29일 오후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 모인 사진기자들이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당선인의 기자회견을 취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29일 오후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 모인 사진기자들이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당선인의 기자회견을 취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언론 격려 프로그램 개발'과 '보도준칙 확대'

한국 언론의 보도는 늘 공정성 논란을 불렀다. 국민은 언론 보도를 접하며 '프레임(구도)'이 짜여 있다고 의심한다. 의도가 없어도 이같이 비친다는 것 자체가 현실이다. 특정 세력의 이익이나 의견을 옹호하거나 과하게 비난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주영기 한림대학교 미디어스쿨 교수는 "원론적으로 얘기하면 '사실에 기반한 보도'는 말은 쉽지만, 개인·세력 등 성향을 고려하면 여러 측면에서 모든 게 사실로 보이거나 가짜로 보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또 "이론적으로 볼 때 보도는 굉장히 선택적 행위이고, 프레임 개념도 하나의 사안을 어느 쪽으로 쳐다보느냐에 따라 좋아졌다가 나빠졌다가 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보도 행위 자체가 선택적일 수밖에 없는 부분이 예전부터 존재했다"고 전했다.

학계가 생각하는 언론의 과제는 '사실에 입각한 보도 문화를 어떻게 정착시킬 것인가' 여부다. 이에 대한 개선 방안으로는 △사회의 언론 격려 프로그램(체제) 개발 △보도준칙 마련 두 가지가 제시됐다.

주 교수는 "정치권이 내는 언론개혁 목소리는 반발과 역효과만 나오고 좋은 결과는 나오지 않는다는 건 역사가 알려주는 상황"이라며 "결국 장기적 얘기가 될 수 있지만 언론이 잘한 것을 계속 고취하고 격려할 수 있는 사회 프로그램이 많이 개발돼야 한다"고 분석했다. 가령 언론계가 기자에게 주는 시상을 떠나 정부 부처나 단체 등이 각 분야 문제를 잘 다루고, 개선에 도움이 되는 솔루션(해결책)을 제시한 언론에 격려하는 시상 제도를 발달시키는 것이다.

또 '사실에 입각한 보도'를 대중에 전달하기 위해 보도준칙을 마련하는 것도 대책으로 나왔다. 감염병 보도준칙같이 정치권 기사 작성 시에도 준수해야 할 규칙을 만드는 것이다. 기자와 정치권이 토론하고, 준칙 프로그램을 활성화하면 뉴스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저렇게 보도하면 안 된다'는 인식이 생길 것이란 의견이다.

지난달 20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과 한반도 정세'를 주제로 열린 한미 언론 합동 토론회가 온라인 생중계 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20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과 한반도 정세'를 주제로 열린 한미 언론 합동 토론회가 온라인 생중계 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신아일보] 석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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