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 내린 한국테크놀로지그룹…새 사업 진출의지 꺾여
간판 내린 한국테크놀로지그룹…새 사업 진출의지 꺾여
  • 이성은 기자
  • 승인 2020.05.27 16: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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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27일 상호명 제거 강제집행…가림막·공시문 부착
"이의신청 등 대응 없어"…"패소한다는 생각 안 한 듯"
자동차 전장부품업체 한국테크놀로지 관계자들과 법원 집행관은 27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한국테크놀로지그룹에서 상호명 제거 등 강제집행을 실시했다. (사진=이성은 기자)
자동차 전장부품업체 한국테크놀로지 관계자들과 법원 집행관은 27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한국테크놀로지그룹에서 상호명 제거 등 강제집행을 실시했다. (사진=이성은 기자)

경기 성남시 분당구 한 업무시설 빌딩 입구 옆 유리 벽면에 있는 입주기업 목록 중 두 곳의 이름 떼어졌다. 대표실로 추정되는 사무실 문에는 더 이상 기존 사명을 사용할 수 없다는 내용이 적힌 공시문이 붙었다.

이곳은 한국타이어의 지주사인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사무공간이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본사 사무실이 위치한 이곳에선 27일 상호명 제거 등 강제집행이 진행됐다. 이는 지난 15일 자동차 전장부품업체 한국테크놀로지가 대기업인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한 상호사용금지 가처분 신청이 일부 인용된 데 따른 조치다.

한국테크놀로지 관계자는 이날 법원 집행관과 함께 강제집행을 동행한 뒤 “이미 사명이 붙어 있는 각종 물품을 치워놓은 것 같았다”며 “대표이사실도 알려주지 않아 대표이사실로 추정되는 사무실 문에 공시문을 붙였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직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이곳은 우리 사무공간이 아니다’며 가로막는 등 민감한 모습을 보였다”며 “이미 치울 수 있는 건 다 치워놓은 것 같았다”고 말했다.

앞서 한국테크놀로지는 지난해 11월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상호사용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이후 지난 15일 한국테크놀로지는 가처분 소송에서 승소했다. 이에 따라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상호가 표시된 간판, 서류, 광고물, 명함 등에서 사명을 사용할 수 없게 됐다.

한국테크놀로지의 승소 이후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대응방안 검토에 들어갔지만, 법원의 판단에 대해 이의신청을 하지 않았다. 한국테크놀로지와도 대화를 시도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테크놀로지 관계자는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이 이의신청을 검토 중이라고 했지만, 아직 하지 않았다”며 “우리와도 접촉을 하지 않는 등 무대응으로 일관했다”고 말했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이 사전에 자사 기업명(빨간 네모)을 떼어낸 것으로 추정되는 빌딩 입구 옆 기업 목록. (사진=이성은 기자)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이 사전에 자사 기업명(빨간 네모)을 떼어낸 것으로 추정되는 빌딩 입구 옆 기업 목록. (사진=이성은 기자)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정체성이 흔들리는 위기에 놓였다. 특히, 이번 강제집행은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이 지난 25일 한국타이어 등 주요 계열사와 함께 서울 강남구 역삼동 본사를 판교로 이전한 지 이틀 만에 벌어진 일이다.

한국타이어는 지난해 5월 지주사인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의 사명을 한국테크놀로지그룹으로 변경했다. 당시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미래사업을 책임질 기술의 리더십을 확보하고, 지속적인 투자로 미래산업을 선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이란 사명은 타이어 대신 과학 기술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테크놀로지(Technology)’를 넣어 타이어 이외 다양한 분야의 새로운 사업에 진출할 의지를 담았다.

하지만, 사명을 사용할 권리를 잃게 되면서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를 드러낼 수 없게 됐다.

이번 위기는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안일한 대응이 초래한 결과라는 게 관련업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한국테크놀로지의 가처분 신청 제기 이후 대응방안에 대해 이렇다 할 검토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처음부터 소송에서 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라며 “관련 사안에 대해 검토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고, 대응력이 떨어지면서 지금까지 이의제기조차 하지 못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이번 주 안에 이의신청을 제기할 방침이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 관계자는 “외부에 홍보할 목적도 없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사무실 등에 사명이 많이 있지 않다”며 “사명 변경까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대표이사실로 추정되는 사무실 문 앞에 부착된 기존 사명을 사용할 수 없다는 내용의 공시문. (사진=한국테크놀로지)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대표이사실로 추정되는 사무실 문 앞에 부착된 기존 사명을 사용할 수 없다는 내용의 공시문. (사진=한국테크놀로지)

[신아일보] 이성은 기자

selee@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