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정치가 결혼을 막고 있다
[기자수첩] 정치가 결혼을 막고 있다
  • 석대성 기자
  • 승인 2020.05.26 1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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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기자가 말했다. "남자친구가 결혼하자는데, 밑천도 없는데 어떡하지". 그래서 "혼수로 간이접이식 침대 가능한지 물어봐"라고 농담을 던졌고, 우리는 씁쓸하게 웃었다.

정부 정책이 혼인율과 출산율을 속절없이 떨어뜨리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지난해 조혼인율은 1000명당 4.7명으로 2010년 6.5명에 비해 급격히 내려갔다.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출생아 수) 역시 지난해 0.92명으로 곤두박질쳤고, 임신·출산을 겪지 않은 부부 중 다수는 '부부만의 생활을 즐기고 싶다'며 무자녀를 선택했다. 그런데도 지난해 조이혼율은 1000명당 2.20명으로 2015년 이후 다시 상승하는 추세다.

위 지표는 결혼에 대한 경계심과 비관적 사고방식이 문화와 젊은 세대 사이에서 점점 더 깊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비혼주의와 저출산, 쉽게 틀어지는 부부관계로 인해 대한민국은 '멸절의 길'에 들어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어도 20대 중반 이상의 사회인이라면 결혼이나 부부관계에 대한 감상적 얘기를 종종 들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젊은이가 결혼을 주저하는 주요인은 대부분의 부부가 불행한 결혼 생활을 근근이 이어가고 있다는 선입견과 경기 악화에 따른 이기주의적 사고가 굳어졌기 때문으로 본다.

상대방에게 끌리는지 이른바 '화학적 반응'이 충분한지 여부를 바탕으로, '결혼하면 경제적으로 쪼들릴 것'이란 전제가 자리한다. 과거 결혼은 상대방과 공익에 이바지하는 공적 제도로 사용됐지만, 이젠 개인의 만족을 위한 계약이자 자신을 위한 도구로 중요해졌다. 신체적 매력과 성적 끌림, 나와 맞는 완벽한 이성을 언젠간 찾을 것이란 극단적 이상주의도 결혼 잣대로 뿌리내린 듯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런 인간을 찾기 어렵단 것이다.

결혼을 위한 저금과 투자를 꺼리고, 눈앞의 즐거움을 미루지 않겠다는 사고를 사회가 만들고 있다. 국가 정책도 여기에 이바지한다. 결혼이 저마다 인생의 중심에 서지 않았던 문명이나 시기는 단 한 번도 없었음에도 사회 문화 개선을 위한 근본적인 제도 쇄신은 찾아볼 수 없고, 당장 눈앞의 숙제 풀기에 몰두하고 있다. 

가령 행복주택은 일부 요건으로 '혼인 중이 아닌 무주택자'를 내걸어 미혼 청년에게 몰아 주다시피 했다. 서울시가 2022년까지 공급한다는 청년주택 8만호 중 5만6000호는 1인 가구 청년 몫, 신혼부부가 들어갈 수 있는 물량은 2만4000호에 불과하다. 또 청약 시장에서 따로 마련한 신혼부부 특별공급 물량도 소수 당첨된 사람에게만 막대한 시세 차익의 기회를 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득 기준을 고리로 맞벌이 가구는 사실상 신청 대상에서 배제하고 있단 목소리도 있다.

정부 정책 역시 결혼도 안 하는데 출산을 전제로 설계했다. 정부가 내놓은 계획이 공백이 생기는 분야를 지원하는 미시적 접근에 불과했다는 학계 평가도 있다. 아동수당이나 양육비 등 지원을 넘어 결혼·출산을 독려할 근본적 처방전 마련이 필요한 실정이다.

정치권과 사회명망가의 독려도 중요하다. '부부의 날'이었던 지난 21일 문재인 대통령과 5부요인(국무총리·국회의장·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중앙선거관리위원장) 내외가 한 자리에 모였지만, 결혼 장려에 대한 언급은 들을 수 없었다.

'외롭지만 혼자 즐기며 살 것인가, 부부로 어렵게 살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다가 결국 전자를 선택하는 현실이다. 경제적·사회적 양극화 해소를 목표로 체제를 바꿔야 할 때다.

bigstar@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