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총액인건비제도로 '열정페이' 강요당하는 공공기관 노동자들
[기자수첩] 총액인건비제도로 '열정페이' 강요당하는 공공기관 노동자들
  • 이소현 기자
  • 승인 2020.05.20 13: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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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코로나19로 어려워진 기업에 대한 자금 지원 등 금융지원 업무가 늘어나면서 공공기관 근로자들이 초과근무에 시달리고 있다.

이에 금융위원회는 공공기관 노동자들을 위해 초과근무 수당을 현금으로 보상해줄 수 있도록 하는 예산 집행 가이드라인을 마련 중이다.

금융위가 내놓은 방안을 보면,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지표에 포함되는 총인건비 산정 시 코로나19와 관련한 초과근무 수당은 제외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정부는 총액인건비제도라는 것을 운용해 공공기관의 근로 수당을 통제하는데, 기획재정부가 매년 인건비 인상률을 정하면 공공기관은 총인건비 예산 범위 안에서 인력과 규모, 수당을 짜야 한다.

공공기관에서는 총액인건비제도를 넘어서는 수당을 줄 수 없다. 총인건비 준수 여부가 기관 경영 평가에서 감점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껏 공공기관 노동자들은 초과근무를 하더라도 일정 예산을 넘어서면 수당 대신 연차로 보상을 대체해왔다.

그러나 최근 금융 지원 업무가 늘면서 연차 보상 수준을 넘어서는 초과근무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어 문제다.

이에 금융위는 경영실적을 직접 평가하는 산하 국책은행들에 대해 코로나19와 관련한 업무는 예외적으로 초과수당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이지만, 130여개 공공기관을 평가하는 기재부는 사실상 이런 방안을 거부하고 있다.

공공기관마다 사정이 각자 다른데, 기관별로 지표와 영향을 분석해 반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다.

신용보증기금이나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등의 경우 최근 업무가 폭증한 반면, 코레일이나 인천공항공사 등 일부 기관은 오히려 코로나19 영향으로 수요가 줄고 경영실적이 악화되는 상황이어서 경영 평가지표를 조정하기 어렵다는 게 기재부의 논리다.

그러나 같은 공공기관 취급을 받는 국책은행과 달리 기재부 산하라는 이유로 초과근무 수당을 보장받을 수 없는 상황은 임금 차별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또, 기재부의 획일적인 일괄 적용 방침이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힘들게 근무 중인 공공기관 노동자들의 근로 의욕까지 꺾어버릴 수 있다.

총액인건비제도는 계속해서 문제로 지적돼왔다.

금융 지원 혹은 대면 업무가 많은 공공기관들은 업무가 집중되는 시기에 초과근무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매년 총액인건비가 모자라 연차 보상으로 대체해온 상황이다.

그러나 연차 보상을 받더라도 인력이 부족해서 결국 연차를 쓰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공공기관들이 자회사를 만들고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데도 총액인건비제도가 한몫했다.

정해진 인건비 예산 안에서 인력을 채용해야 하다 보니, 기존 인력의 보수를 깎지 않으면 신규 채용도 불가능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규모가 큰 공공기관에서는 자회사를 만들거나 외주 용역을 고용해 기관 밖에서 인력을 충당하는 형태가 굳어져 버렸다.

기관 평가 효율성이라는 명분 하에 여러 부작용을 지닌 총액인건비 제도를 운용하는 것이 합당한 일인지 재고해야 한다.

[신아일보] 이소현 기자

sohyun@shin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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