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긴급재난지원금 맘 편히 쓰세요
[기자수첩] 긴급재난지원금 맘 편히 쓰세요
  • 천동환 기자
  • 승인 2020.05.19 11: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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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을 위해 정부가 총 14조원 규모 긴급재난지원금을 풀고 있다.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할 것이냐 말 것이냐부터 명칭을 어떻게 할 것이냐, 대상 범위를 어떻게 정할 것이냐 등을 두고 고민이 많았지만, 결국 모든 국민에 지급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그런데 막상 재난지원금이 풀리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기부'가 고민거리로 떠올랐다.

정부는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면서 '성숙한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연대 실현'이라는 명목으로 자발적 기부가 가능토록 했다.

재난지원금 지급에 앞서 지난 7일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재난지원금 60만원 전액을 기부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주요 언론들은 이 같은 내용을 속보로 보도했고, 정치권과 재계에서도 기부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당장 경제적 어려움이 크지 않은 이들이 좀 더 큰 어려움에 부닥친 이들을 위해 권리를 내려놓는다는 취지는 마땅히 박수받을 만하다. 대통령을 필두로 한 사회 지도층이 국민을 먼저 생각하고 돕는 데 앞장서는 모습도 보기 좋다.

문제는 이런 움직임이 일반 국민들에게까지 은근한 기부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만난 한 기업의 임원은 "재난지원금을 신청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걸 어떻게 받느냐?"고 되물었다.

누구나 알만한 기업의 임원 정도 되는 사람이 재난지원금을 기부하지 않고 받아 쓰면, 사회적 눈총을 받아야 하는 분위기가 이미 만들어졌다는 의미다. 

물론, 이 임원은 재난지원금을 받지 않아도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을 것이다. 다만, 그는 일정 계층에서 반 강제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기부' 행위에 불만을 나타냈다. 정부가 대놓고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여러 행위와 표현을 통해 "고소득층은 알아서 내놓으라"는 메시지를 느끼기에 충분했다는 얘기다.

이런 고민은 비단 고소득층에 국한되지 않는다. 당장 기자 주변의 중·저소득층 사람 중에도 기부를 고민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기부 자체를 문제 삼고 싶지 않다. 위기 상황에서도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는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를 정부와 언론이 강요한 듯한 상황은 부정적이다.

재난지원금은 코로나19로 멈춘 내수를 돌리고, 소상공인의 숨통을 튼다는 취지에 맞게 잘 쓰면 된다. 국민경제를 살리기 위해 공급한 자금이 다시 정부로 되돌아가 다른 곳에 쓰이도록 하는 것 보다는 본래 역할에 맞게 충실히 쓰이도록 하는 게 오히려 효과적일 수 있다.

지금은 재난지원금을 잘 쓰는 것이 기부하는 것보다 중요하다.

cdh4508@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