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재용 부회장의 고육지책…선순환 일으킬까
[기자수첩] 이재용 부회장의 고육지책…선순환 일으킬까
  • 장민제 기자
  • 승인 2020.05.07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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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선 깜짝 발표가 나왔다. 이 부회장이 ‘자녀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 대한민국 1등 기업이자 ‘왕조’로도 불리는 삼성그룹의 총수가 4세 경영을 포기한 것이다.

이 부회장은 이와 관련해 “경영환경도 녹록지 않고, 제 자신이 제대로 된 평가도 받기 전에 승계를 언급하는 건 무책임한 일”이라고 했다. 또 “자신의 책임·사명은 성별·학력·국적을 따지지 않고 인재를 모으는 일”이라고 말했다.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오너 중심의 경영에서 벗어나 전문경영인 체제를 확고히 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포기’는 자녀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기엔 녹록지 않다는 판단에서 꺼내든 고육지책으로도 보인다.

이 부회장은 과거 에버랜드와 삼성SDS 전환사채 사건에선 주식을 헐값에 사들여 비싸게 파는 방식으로 지배력을 확대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엔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이 반발하자, 소액주주에 호소하는 광고까지 게재하며 방어전을 치르기도 했다. 시민단체와 언론에선 비판이 쏟아졌고, 일각에선 ‘이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에게서 증여받은 60억원으로 삼성그룹을 손에 넣었다’는 말도 나왔다.

이 같이 험난한 과정을 거쳤지만, 삼성그룹에 대한 이 부회장의 지배력은 그리 공고하진 않다. 현재 이 부회장은 지주사격인 삼성물산의 최대주주(17.08%)로, 특수관계인들의 지분을 합산할 경우 32.94%다. 특히 삼성의 핵심인 삼성전자를 살펴보면 이 부회장의 지분은 0.7%다. 삼성물산, 삼성생명 등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더해도 21.21%에 불과하다.

상속·증여세가 50%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부회장이 자녀에게 정상적인 방법으로 지분을 상속할 경우 지배력 하락은 불가피하다. 여기에 과거 약속했던 이건희 회장 차명재산의 사회 환원이 실현되면, 지배력은 더욱 떨어진다.

승계 과정에서 지배력 강화를 위해 계열사 지분 정리 등도 고려해볼 만하지만, 삼성은 주목받는 대상이다. 합법이라 해도 지탄받을 수 있고, 위법·편법이면 더더욱 그렇다. 이 부회장은 자녀가 경영권 승계의 가시밭길을 걷게 하지 않겠다고 판단한 셈이다.

다만 삼성이 세습경영에서 벗어나겠다고 선언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피를 나눴다는 이유만으로도 많은 이들의 일자리를 책임질 그룹 총수에 오른다는 건 비상식적이지만,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시선은 다른 재벌기업들로 향한다. 국내 재계 1위인 삼성이 던진 ‘세습경영 종료’라는 돌에 재계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글로벌 기업 창업주들의 소유-경영 분리, 또는 전 재산 사회 환원 소식들이 전해질 때마다 부러움을 산다. 이젠 우리나라 재계가 전 세계에서 그런 부러움의 대상이 됐으면 한다.

jangstag@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