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계보정치(系譜政治)의 무용론(無用論)
[칼럼] 계보정치(系譜政治)의 무용론(無用論)
  • 신아일보
  • 승인 2020.04.22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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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스님 자장암 감원・용인대 객원교수
 

예전에는 사대부(士大夫)가 갖추어야할 교양이 '보학(譜學)'이었다. 보학이란 족보학(族譜學)을 말하며 이를테면 가계도(家系圖)이다. 내 조상 뿐 아니라 상대의 어떤 조상이 크게 현달(顯達)한 분이고 입향조(入鄕祖, 그 지역에 처음 들어와 자리를 잡은 조상)이며 어떤 벼슬을 했고 불천위(不遷位, 불천지위(不遷之位),부조위(不祧位)라 하며 나라에 큰 공훈이 있거나 도덕성과 학문이 높아 신주를 땅에 묻지 않고 사당(祠堂)에 영구히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신위(神位)를 옮기지 않고 계속 모시는 제사는 어떤 분이며 묘갈명(墓碣銘)과 행장(行狀)은 어느 명망가(名望家)가 썼으며 임금에게 어떤 상소문을 썼다가 어디로 유배를 갔으며 어떤 문집을 세상에 남기고 어느 서원에 배향(配享)됐는가.

이런 세세한 지식을 지니고 있는가에 대한 것으로 보학의 깊이를 지닌 선비를 교양과 기본 품격조차 지닌 것으로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격세지감(隔世之感), 필자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에는 청계천의 즐비하게 늘어선 고서점에 가면 어느 양반집 귀한 족보였는지, 어느 대갓집 광에서 쥐의 배설물에 지린 것인지, 아님 초가의 빗물에 젖은, 빛바래고 물기 번진 족보가 뭉터기로 쌓여 있었다.

산업화 세대전에는 종가집이나 집안의 장손이 신주처럼 귀하게 모셨을 족보가 산업화 과정에서 도시로 인구가 과밀하게 편중하고 강남의 개발과 숲을 이룬 아파트 문화에서 퀘퀘한 냄새나는 오랜 고물 책자가 어울리지 않아서 였는지, 내버려 산더미 처럼 쌓인 족보를 보고 충격을 받기도 했지만, 그 시절부터 한 권 두 권 모으기 시작한 남의 집안 족보 몇권을 지금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으니 필자도 어지간히 별난 취미를 지닌 셈이다.

그때 그시절에는 조간 뉴스의 첫 머리가 각하께서 등장하거나 어쩌다 동교동계, 서교동계, 청구동계 하며 계보있는 정치인 근황이 가끔은 주요 소재였고 어쩌다가 그들 계보를 따르는 행동대원 동정이 정치 뉴스의 전부였다.

삼김(三金)이 시대의 주류였으니, 어느 계보라도 꿰고 있어야 정계진출이 가능하던 그러한 시기였다. 말하자면 가신 정치 시절에는 계보가 있어야 공천도 받고 보좌관도 하고 비서도 하며 야당의 정치인으로 성장해 금배지를 달 수가 있었다. 그 계보의 정객들이 용케 오랜세월을 잘도 버텨 거물 정객으로 성장하고 지금도 신화처럼 5선, 6선을 했느니, 의장감이니, 원내대표감이니, 하지만 그 시절부터 정치에 입문해 살아 왔다면 거의 40년 가량 여의도로 출근을 한 셈이니, 입신의 경지에 이른 것이라고 본다. 

그 당시 학생운동권으로 총학생회 회장도 하고, 80년대 서울의 봄 시기에는, 서울역에 운집한 학우들이 청와대 진격을 논의하는 마당에서 "회군을 하자", "말자", 하며 선동(煽動)하고 가두투쟁(街頭鬪爭)하던 몇몇 학생 운동권 인사들이 지금도 정치 일선에서 버젓하게 살아 있는 것을 보면 삼김시대의 계보 정치가 지금도 살아 꿈틀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번 선거로 거대 여당이 출범하게 됐고, 야당이 폭락해 '보수의 전멸'이니 '견제 세력이 사라졌다'느니, 하지만 정치를 모르는 산중의 문외한(門外漢)이 보기에는 쏠쏠한 재미도 없지 않았다. 이를 부득이 거론하면 초선 당선인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사실 정치를 바라보는 큰 재미가 사람이 바뀌는 것을 보는 것이다.

구세대가 저물고 신세대가 등장하는 것이 신선하고 기대해 봄직하다. 

이번 코로나19 바이러스확산이 구태의연(舊態依然)했던 한국 정치사에도 나름 기여를 했다면, '산업화 세대에서 민주화세대로의 세대 교체'가 진행됐으며 일부분이지만 사람이 바뀌었고 민의를 대변케 하는 특권계층인, '국회의원' 이라는 권세의 자리에서 몇선을 해 먹으며 자손대대로 떵떵거릴것 같았던 사람들이 도태돼 낙선 하는걸 보니, 정치란 "어느 특정인의 계보에 의해서 이루워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번 총선이 주는 감정과 교훈은 어느때 보다 후련하기도, 또 한편은 섭섭하기도 하다. 한때는 공천을 좌지우지 하며 기고만장했던 그 권력자들의 뜻에 의해서가 아니라 권력의 실제 주인인 유권자의 손에 건방지고 오만했던 무지몽매(無知蒙昧)한 권력도 단칼에 베어졌음이다.

/탄탄스님 자장암 감원・용인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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