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정부에는 참 쉬운 부동산 대책
[기자수첩] 정부에는 참 쉬운 부동산 대책
  • 천동환 기자
  • 승인 2020.04.15 16: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

이런저런 문제가 있어도 할 일은 해야 한다. 문제에 너무 집중하다 보면 정작 근본을 놓칠 수 있다.

정부의 주택시장 규제가 이런 점을 간과한 채 맹목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할 때가 됐다.

규제는 본질적 특성상 잘못된 현상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잘못된 것을 찾아 도려내고, 추가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차단하는 행위다.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억제하는 데 무게 중심을 둔다.

현 정부는 부동산 문제를 대하는 데 있어 '해결'보다는 '억제'에 초점을 맞춰왔다. 정부 입장에서는 규제를 통한 억제가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훨씬 쉽기 때문이다.

혹자는 정부가 내놓은 규제도 결국에는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여러 가지 방법 중 하나라고 반박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억제가 아닌 문제 해결에 초점을 둔 규제가 7월 장맛비처럼 쏟아져 나올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현 정부가 지난 2·20 대책까지 부동산 대책을 총 20번 내놓은 것으로 분석한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근 3년간 2개월에 1번 이상 부동산 대책이 나왔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나온 대책들을 보고 있자면 매년 이맘때 여의도 윤중로에 흩날리는 벚꽃잎을 보듯 정신이 혼미해진다.

대책이 많다 보니 그 안에 담긴 규제 하나하나는 현장과 동떨어진 경우도 숱하다. 국토부가 12·16 대책 후속 조치로 추진 중인 수도권 투기과열지구 우선공급 대상자 거주기간 강화도 실효성을 의심케 하는 대표적인 규제 중 하나다.

'투기수요 근절 및 실수요자 보호'라는 목표에 따라 우선공급 대상자 최소 거주기간을 기존 1년에서 2년으로 늘린다는 얘긴데, 1년 차이가 투기수요를 얼마나 몰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위장 전입 등을 통한 투기수요를 억제하고 실수요자에게 기회를 더 준다는 취지지만, 이 역시 '문제 해결'에 집중해서 만들어 낸 규제라고 보기에는 너무 허술하다. 거주 이동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특정 지역에 오래 산 사람을 실수요로 본다는 개념도 잘 이해는 안 된다. 

어떤 지역에서 주택을 청약하려는 사람은 일단 그 지역에 들어가 2년 이상 살아야 우선순위를 받을 수 있다는 건데, 아무리 생각해도 투기 수요를 몰아내는 긍정적 효과보다 실수요자의 불편이 더 클 수 있는 부분이다. 정부 스스로 실수요자 범위를 축소해 수급 매칭을 더 어렵게 하는 악수일 수 있다.

아이들이 집안에서 시끄럽게 뛰어놀면 놀이터로 데리고 나가는 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찍소리 못하게 혼내기만 하는 것은 아이 입장을 생각하지 않는 단편적 규제다.

정부는 언제까지 자기중심적 규제로 쉽게 쉽게 정책을 펴나갈 셈인가? 언제까지 투기수요가 무서워 실수요자의 발까지 묶을 셈인가?

cdh4508@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