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한진그룹 분쟁 장기전, 피로감만 쌓여
[기자수첩] 한진그룹 분쟁 장기전, 피로감만 쌓여
  • 이성은 기자
  • 승인 2020.03.31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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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온 이야기들을 의사록에 반드시 기록해달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 반도건설로 구성된 ‘3자 연합’ 측 가운데 반도건설 계열사인 반도개발 측 의결권 대리인은 지난 27일 서울 중구 한진빌딩에서 열린 한진그룹 지주사 한진칼 정기 주주총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주총 시작 시간이 당초 오전 9시에서 12시쯤으로 미뤄진 뒤 사외이사 표결을 진행하려던 도중 주총 시작 시점에 입장한 참석자 일부가 중간에 나가면서 출석 인원수가 달라지자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반도개발 의결권 대리인은 “(주총 시작이) 3시간이 지나면서 자리를 떠난 사람도 있다”며 “중간에 자리를 비운 주주를 기권 처리하는 건 상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주총에 참석한 변호사는 “도중에 나간 주주들을 기권 처리해도 문제가 없다”는 취지의 설명을 했지만, 대리인의 불만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이외에도 3자 연합 측은 발언권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면서 현 경영진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으며, 참석 주주들의 투표 검표 요원으로 KCGI 측 관계자로 보이는 이들을 추천하는 등 주총장 분위기 장악을 위해 애쓰는 모습이었다.

3자 연합 측의 주장과 훼방에도 주총의 최대 관심사였던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 안건은 가결됐다.

이는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다. 주총 개최에 앞서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ISS와 국민연금의 의결권 자문사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조 회장 선임에 찬성 의견을 냈다. 한진칼 지분 2.9%를 보유해 캐스팅보트(Casting Vote)를 쥐었다는 평가를 받는 국민연금도 주총 전날 조 회장 선임 안건에 대해 찬성했다.

한진칼 주총은 조 회장의 승리로 끝났지만, 이는 ‘1차전’이란 말이 나온다. 주총 이후 3자 연합 측의 한진칼 지분 매집으로 경영권 분쟁은 장기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반도개발 측 의결권 대리인의 “의사록에 기록해달라”는 말도 앞으로 분쟁 장기화에 대비한 발언으로 들린다.

3자 연합은 그동안 한진칼 주총이 열리기 전까지 조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을 반대해왔다.

현재 한진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대한항공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항공업계 불황으로 어려움에 직면했다. 현재는 안정적인 리더십으로 사태를 지켜보며, 경영 안정화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때다.

한진그룹은 경영권 분쟁 장기전을 대비해 역량을 쏟아야 할 만큼 대외적 여건이 여유롭지 않다.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 2차전은 경영진과 여론에 피로감만 쌓이게 한다.

selee@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