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개 의석을 놓고 겨루는 비례대표 선거에는 모두 35개 정당이 312명의 후보를 냈다. 경쟁률은 6.64:1로 4년 전보다 2배 가까이 늘었다.
이에 따라 유권자들이 받게 될 비례대표 투표용지 길이는 48.1cm다.
지난 총선에서는 21개 정당이 이름을 올려 33.5cm였는데, 이 기록을 4년 만에 갈아치웠다.
지인들과 여름휴가를 갈 때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면 20만원 정도가 나오는데, 그때 받게 되는 영수증 길이 정도 될까?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는 지난해 12월 '4+1 협의체'의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반발하며 "100개 정당이 만들어져 선거를 하게 되면 공정하고 제대로 된 투표가 되겠나"라며 1.3m 길이의 가상의 투표지를 들고 나와 경고한 바 있다. 그 예상이 과장되긴 했지만 틀리지는 않은 셈이다.
또한 투표지가 분류기에 넣을 수 있는 길이(34.9cm)를 넘어서 100% 수개표가 불가피해졌다고 한다.
이 역시 2002년 지방선거에서 투표지 분류기가 도입된 2002년 이후 18년 만에 처음이다.
지난 총선 때 동원된 개표 사무원은 4만7000여명이었는데, 이번에는 코로나19로 마스크와 장갑을 낀 상황에서 수개표까지 해야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개표인력 역시 역대 최대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개표 결과 발표가 길어지는 것 역시 당연해 보인다.
참으로 여러가지 의미에서 신선한 선거다.
지역구 후보 기호를 포함한 정당의 전국통일기호는 더불어민주당 1번, 미래통합당 2번, 민생당 3번, 미래한국당 4번, 더불어시민당 5번, 정의당 6번 순으로 정해졌다.
비례대표 후보 투표용지에는 후보를 내지 않은 민주당과 통합당이 빠지면서 3번의 민생당이 가장 위 칸을 차지하고 이어 미래한국당, 더불어시민당, 정의당, 우리공화당 순으로 기재된다.
정책은 물론 정체성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고 이름이 서로 엇비슷한 정당들이 우후죽순 생긴 것이다.
이는 지난해 12월 범여권 '4+1 협의체'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핵심으로 하는 선거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비례대표 제도는 당초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고 직능대표성을 높인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그러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이번 총선에서는 사실상 비례대표제의 본래 취지는 사라지고 부작용과 잡음만 나오는 씁쓸한 모습이다.
지역구 투표와 정당 투표를 각각 행사하는 유권자 입장에서는 큰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