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성범죄 타진이냐, 제 살길이 먼저냐… 기로 선 20대 국회
[기자수첩] 성범죄 타진이냐, 제 살길이 먼저냐… 기로 선 20대 국회
  • 석대성 기자
  • 승인 2020.03.26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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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두고 관련 부처 긴급현안보고를 받았던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결국 기약없이 끝났다. 25일 '텔레그램 등 디지털 상에서의 성범죄 근절을 위한 결의안'까지 의결하며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구체적 입법을 앞장 서 추진하겠다"고 공언했지만, 21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스무날도 남지 않았다는 것을 고려하면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부는 앞서 2017년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디지털 성범죄 피해 방지 종합대책'을 보고했다. '리벤지 포르노'라는 보복성 성적 영상물을 유포하면 무조건 징역형으로 처벌한다는 방침도 밝혔다. 그럼에도 법무부의 '2020 성범죄백서'를 살펴보면 지난 2000년 7월 청소년 대상 성 매수자 신상공개제도를 도입한 후 20여년 간 누적된 성범죄자는 7만4956명이다. 성범죄는 2009년 1만건에서 지난해 2만3000건으로 늘었고, 특히 카메라 등을 이용한 불법촬영 범죄는 2013년 412건에서 지난 2018년 2388건까지 폭증했다.

성범죄가 왜 늘어나는지를 살펴보면 강간에 해당하는 범죄 발생 추이를 보면 5000건대로 유의미한 변화가 없다. 문제는 강제추행이다. 강제추행은 지난 2014년 1만4000여건에서 지난 2018년 1만7000여건으로 증가했다. 더욱이 문제인 것은 주 피해 연령층이 21~30세 사이 여성이라는 것과 다음으로 피해를 입는 연령이 16~20세 사이 청소년이라는 것이다.

전문가와 정치권의 의견을 종합하면 디지털 성범죄는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 저지른 범죄를 기소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성범죄는 물론 디지털 성범죄도 국가마다 처벌 수준이 다른 상황이다. 이 때문에 일부 전문가는 국경을 초월하는 국제법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다만 국제법 마련 중심에 대한민국이 설 수 있을진 의문이다. 디지털 성범죄가 증가 일로에 있지만, 정치권은 이번에도 소홀히 넘어갈 것이란 예상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2017년 종합대책 수립에도 범죄는 늘고, 국회는 국정감사 때나 정부를 비판하는데 그치는 모양새다. 특히 국회는 정부를 향해 "뭐 했느냐, 대책은 무엇이냐"라고 힐난하는 반면, 정부는 국회를 향해 "입법이 필요하다"고 탓을 돌리는 장면이 때마다 연출된다. 이들이 의회정치와 행정에 소비하는 시간은 결국 실속없는 요식행위에 불과했단 것을 방증한다.

여야가 저마다 n번방 재방 방지법을 내놓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에선 백혜련 의원이 방지 3법을 발의했고, 송희경 미래통합당 의원은 아동·청소년 성 관련 영상을 단순히 소지한 사람도 벌금형 이상으로 처벌하고, 포털 사이트 관리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을 냈다. 윤소하 정의당 의원은 '원포인트(최대현안처리)' 국회를 제안한 상태다. 다만 이를 위한 임시국회는 4·15 총선 후 열릴 가능성이 높다. 결국 성범죄 타진보다 제 살길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bigstar@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