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런저런] 너도나도 ‘욱’ 하는 사회
[e-런저런] 너도나도 ‘욱’ 하는 사회
  • 신아일보
  • 승인 2020.03.12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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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퇴근 길 지하철 안은 가득 들어찬 시민들로 제 몸하나 옴짝달싹할 수 없을 만큼 틈이 없다. 의도적이지 않아도 흔들리는 지하철 안에서는 어쩌다 옆 승객의 발을 밟기도 하고 밀치기도 하는 등 나도 모르는 사이 신체접촉이 일어나고 만다.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 사태 여파로 밀접접촉이 꺼려지는 현실에 너도나도 예민해진 상태에서 한 청년과 중년 남성의 신체접촉이 일어나고 말았다. 

“왜 사람을 기분나쁘게 치느냐”는 중년남성의 날선 외침에 청년은 그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당신이 먼저 밀었지 않느냐”며 응수했다. 

중년남성을 가운데 두고 왼쪽은 나, 오른쪽은 청년이 서있었는데 밀려드는 승객들의 압력으로 그만 내가 중년신사의 몸을 밀게 됐고 중년신사는 그 밀림으로 청년을 밀게 된 것이다. 

어디하나 피할 곳 없는 만원 지하철에서 서로 밀었다며 다투는 사이, 그 싸움의 원인제공자인 나는 몸 둘 바를 모르듯 식은땀까지 났지만 마치 나는 아무 상관없는 척 눈길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중년신사가 나를 지목, 이쪽에서 먼저 밀었다고 말한다면 나는 또 옆사람이 밀었다고 해야하는 걸까. 

그렇게 그들의 공방은 내가 내릴 때까지 지속됐다. 

그날 저녁 방광염 약을 구매하기 위해 들른 약국에서도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약을 사려고 길게 늘어선 줄에도 한 중년여성이 약사에게 마치 개인 건강 상담하듯 ‘세월아 네월아, 미주알고주알’하자 바로 뒷줄에 서서 기다리던 남성이 “양심이 없는 것 아니냐”며 고함을 친 것. 

그러자 중년여성은 “내 순서라 묻고 싶은 것 묻고, 내 약 사는데 네가 뭔데 내 양심을 들먹이냐. 너는 그렇게 완벽한 XX냐”며 싸우기 시작, 그렇지 않아도 길게 늘어선 줄에 그들의 싸움으로 대기 시간은 한없이 길어졌다. 

다른 손님들이 혀를 차며 나가버리고 약사가 그들의 육박전 사이로 몸 받쳐 막아선 후에야 겨우 싸움은 종료됐다. 

코로나사태가 확산되며 이제 내가 사는 지역뿐만 아니라 그 어느 곳도 안전한 곳이 없다. 

각박해진 사회 속에서 하루하루 고단하게 살아가는 시민들의 모습이 그 어느 때보다 안타깝게 다가오는 오늘이다.

master@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