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흔드는 시민단체…기업 경영활동 위축 우려
국민연금 흔드는 시민단체…기업 경영활동 위축 우려
  • 이성은 기자
  • 승인 2020.02.27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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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지분율 낮아도 실현 가능성 없는 의견 개진 요구
"무분별한 법적 이슈 부각…수익성 극대화 목적 맞지 않아"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국민연금을 향한 일부 시민단체의 무리한 요구를 두고 비판적인 목소리가 새나오고 있다. 이들 시민단체는 국민연금이 실질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 힘들 만큼 적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만 “기업 회장 등의 사내이사 해임 요구를 해야 한다”는 등의 입김을 불어넣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시민단체의 이런 행보가 자칫 기업 경영활동에 지장을 줄 것이라는 관측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산업계는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 등으로 불황을 겪고 있는 터라, 시민단체의 이 같은 요구는 시기상 들어맞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2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참여연대 등은 최근 국민연금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요구하는 등 비판적인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앞서 참여연대,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등은 지난 5일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국민연금 최고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에서 ‘국민연금의 수탁자책임 방기 규탄과 주주 활동 촉구 피케팅’을 가졌다.

이들은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경영권 싸움은 국민연금이 주주 활동을 소홀히 한 방증”이라며 “주총 시즌을 맞아 (국민연금이)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24일에는 삼성 계열, 효성, 대림에 질의서를 발송해 내달 주총에서 기업지배구조 개선 안건 상정 계획을 질의했다. 이들 기업은 회사에 대한 충실 의무 등을 위반한 이사회의 경영 결정 등으로 기업가치가 훼손된 대표적인 기업이라는 게 참여연대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민연금에 대한 참여연대 등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 촉구는 무리한 요구라는 지적도 나온다.

다음 달 정기 주총에서 조현준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안건이 걸린 효성의 경우, 국민연금이 주총에서 실질적으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반대 등의 영향력을 발휘하기 힘들 전망이다.

지난해 12월 기준 국민연금이 보유한 효성의 지분은 10%며, 조현준 회장 측 우호지분은 54.72%다.

효성을 비롯한 효성티앤씨, 효성중공업, 효성첨단소재, 효성화학 등 효성그룹의 주력 5개사는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은 1조102억원을 기록해 지난 2016년 이후 3년 만에 영업이익 1조원을 돌파하는 등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

또 국민연금은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여부가 결정되는 그룹 지주사 한진칼 주총에서 적은 지분으로도 ‘캐스팅 보트(Casting Vote)’ 역할을 맡을 것으로 관측된다.

최근 조 회장 측과 조 회장의 경영권에 맞서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측은 우호지분 확보 경쟁에 나서는 가운데, 한진칼 지분 4.11%를 보유한 국민연금은 캐스팅 보트를 쥐게 됐다. 국민연금이 어느 편에 서느냐에 따라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여부가 결정될 수 있는 것이다.

항공업을 주력으로 하는 한진그룹의 경우 최근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업황 부진이 연일 이어지는 와중에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강화는 본연의 사업에 집중하기 힘들 수 있다.

재계에서는 이를 두고 국민연금이 참여연대 측이 촉구한대로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에 나설 경우, 실정에 맞지 않는 경영 간섭으로 기업인들의 경영을 위축시킬 것을 우려하고 있다. 주주권 행사 강화는 오히려 수익이 좋은 기업들마저 혼란에 빠트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경영진의 성과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수는 있지만, 무분별하게 법적 이슈를 부각하는 것은 국민연금의 수익성 극대화라는 목적에 부합하지 않다”며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산업계 전반에 불확실성이 짙게 깔린 상황에서 참여연대 측의 고발 등 추가 조치로 기업경영활동이 위축될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한편 참여연대 측의 국민연금에 대한 이 같은 요구는 지난 2018년 도입되고, 지난해 12월 가이드라인을 의결한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책임에 대한 원칙)와 최근 5% 룰이 완화된 점을 고려한 행보로 풀이된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국민연금이나 자산운용사와 같은 기관 투자자들이 큰 집의 집안일을 맡은 집사(스튜어드, Steward)처럼 소비자와 수탁자가 맡긴 돈을 자신의 자금처럼 여기고, 최선을 다해 관리·운용해야 한다는 모범 규범을 뜻한다.

5% 룰은 상장사의 주식 등을 5% 이상 보유하거나 보유 지분율이 1% 이상 변동이 생기면 이를 5일 이내에 공시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제도다. 5% 룰을 일부 완화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은 지난달 21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이번 시행령 개정에는 지분보유 목적에 ‘일반투자’가 신설됐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은 일반투자를 통해 기존에 ‘경영 참여’로 분류됐던 법을 위반한 회사 임원의 해임 청구, 배당 증액 요구,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정관 변경 추진 등을 할 수 있다. 국민연금은 현재 56개 기업의 주식 보유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일반투자로 변경했다.

selee@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