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KCGI '막장 시나리오'의 오류
[기자수첩] KCGI '막장 시나리오'의 오류
  • 이성은 기자
  • 승인 2020.02.23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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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는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유행한 극적 장치다. 연극의 맥락과 관계없이 갑자기 신이 등장해 갈등을 해소하는 상황을 말한다.

막장 드라마로 불리는 일부 국내 TV드라마에도 이와 비슷한 방식의 이야기를 전개한다. 갈등의 해소나 이야기의 흐름을 뜬금없이 바꾸려 할 때 등장인물의 죽음 등을 이용하는 것이다.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는 한진그룹 경영권을 흔들며, 막장 드라마의 시나리오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실적 악화 등의 모든 책임을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에게 돌리며, 자리에서 물러날 것을 요구한다. 조 회장이 경영권에서 손을 떼면 그룹 내 갈등이나 경영 악화가 모두 해소될 것이란 주장이다.

강성부 KCGI 대표는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한 호텔에서 열린 ‘한진그룹 정상화를 위한 주주연합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그동안 조원태 회장의 경영 기간을 비롯해 한진그룹의 총체적 경영 실패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강 대표는 대한항공 부채비율이 861.9%에 달하는 점을 들며 “지난 1년간 경영 성과가 없었다”면서 “대표이사라면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강 대표는 이날 한진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의 이사 자격 조항 신설 등 정관 변경 제안 등의 내용을 밝히기도 했지만, 이렇다 할 눈에 띄는 제안은 없었다.

이 같은 기자회견에 한진그룹 측은 입장문을 내고 “명확한 비전도, 세부적인 경영전략도 제시하지 못한 보여주기식”이라며 “기존에 제시했던 전략의 재탕일 뿐 아니라 산업에 대한 전문성도, 실현 가능성도 없는 뜬구름잡기식 아이디어만 난무했다”고 비판했다.

한진그룹 측은 입장문에서 KCGI 측이 제안한 이사 자격 조항 신설, 전문경영인, 부채비율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며, KCGI 측을 “단기 성과를 바라보는 투기세력”으로 규정했다.

한진그룹 측의 입장은 일부 타당했다. 특히, 부채비율과 관련해선 이해할 만한 설명을 내놨다.

한진그룹 측은 부채비율에 대해 “항공업종은 항공기를 도입하기 위한 대규모 투자가 필수적”이라며 “타 산업에 비해 부채비율이 높은 특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 “최근 부채비율이 다소 높아진 이유는 운용리스의 부채를 반영하는 리스회계기준 변경과 환율 상승에 따른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르게 생각하면 KCGI 측은 설득력이 약했던 셈이다. 기자회견에서 KCGI 측의 가장 강력한 주장은 “조 회장은 경영 실패를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구호였다. 하지만 근거가 부족했다.

KCGI의 주장이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더욱 꼼꼼하고, 설득력 있는 제안이 필요하다. 조 회장이 자리에서 물러나는 게 모든 갈등을 해소하는 해답이 되는 막장 드라마 시나리오는 곤란하다.

selee@shin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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