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1세대 마지막 큰별 신격호 회장 타계…향년 99세
유통 1세대 마지막 큰별 신격호 회장 타계…향년 99세
  • 박성은 기자
  • 승인 2020.01.19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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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감한 투자와 도전 정신으로 세계무대서 '롯데' 이름 떨쳐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제공=롯데지주)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제공=롯데지주)

유통업계 큰별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1월19일 오후 4시29분에 향년 99세로 별세했다.

롯데그룹은 이날 “전날 밤부터 신 명예회장 병세가 악화돼 서울 아산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아오다 이날 별세했다”고 밝혔다. 신 명예회장은 주민등록상 1922년생으로 만 97세이지만, 실제는 1921년생으로 지난해 10월31일 백수(白壽·99세)를 맞았다.

신 명예회장은 창업 1세대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였다. 신 명예회장의 별세로 고(故) 이병철 삼성 회장과 정주영 현대 회장, 구인회 LG 회장, 최종현 SK 회장 등 창업 1세대 경영인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됐다.

신 명예회장은 식민지 시대에 맨손으로 소규모 식품업을 시작한 이후 우리나라와 일본 양국에 걸쳐 식품과 유통, 관광, 건설, 석유화학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며 롯데를 국내 재계 5위의 대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특히 과감한 투자와 진취적인 도전으로 글로벌 무대로까지 사업영역을 활발히 확장해 롯데라는 브랜드를 널리 알린 자수성가형 기업가의 성공모델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신격호 명예회장의 젊은 시절 모습. (제공=롯데지주)
신격호 명예회장의 젊은 시절 모습. (제공=롯데지주)

◇5남 5녀 중 장남…사업가 기질 발휘

신 명예회장은 1921년 경상남도 울산에서 5남 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39년 울산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만 20세가 되던 1942년 사촌형이 마련해준 노잣돈으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와세다대학교 응용화학부에 적을 두면서, 당시 조선인이라는 불리한 상황을 극복하며 낮에는 우유와 신문을 배달하고 밤에는 학교를 다니며 학업을 이어나갔다.

그러던 중 1944년 선반(절삭공구)용 기름제조공장을 처음으로 창업했지만, 2차 대전 때 공장이 전소하며 큰 빚을 지게 됐다.

하지만 청년 신격호는 좌절하지 않고 다시 사업자금을 마련해 1946년 허물어진 군수공장에서 비누를 만들어내면서 재기에 성공했다. 그는 워낙 물자가 부족한 시절이라 1년도 채 안 돼 적지 않은 돈을 벌었다.

사업가 신격호의 타고난 재능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건 바로 이 때부터다. 미군이 일본에 주둔하면서 껌이 큰 인기를 끌게 되는데, 신격호는 타고난 사업감각을 발휘해 껌 사업에 뛰어들어 큰돈을 벌게 된다.

이후 그는 자본금 100만엔, 종업원 10명의 법인사업체를 만들게 된다. 1948년 창립한 ‘롯데’는 그렇게 탄생했다. 문학에 심취했던 청년 신격호는 기업명 롯데를 독일작가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 이름에서 따왔다.

롯데는 껌 사업을 시작으로 초콜릿과 캔디, 비스킷, 아이스크림, 청량음료 부문까지 사업을 공격적으로 확장하며 성공을 거듭한다.

1979년 롯데쇼핑센터 개장 당시 신격호 롯데회장(앞줄 왼쪽 세번째)이 테이프를 커팅하는 모습. (사진=롯데지주)
1979년 롯데쇼핑센터 개장 당시 신격호 롯데회장(앞줄 왼쪽 세번째)이 테이프를 커팅하는 모습. (사진=롯데지주)
1989년 롯데월드 개관식 때 참석한 당시 신격호 롯데회장. (사진=롯데지주)
1989년 롯데월드 개관식 때 참석한 당시 신격호 롯데회장. (사진=롯데지주)

◇세계 ‘첫’ 세계 ‘최대’ 기록의 산증인

신격호 명예회장의 경영철학은 정직과 봉사, 정열로 압축된다. 신 명예회장은 산업불모지인 모국에 기업을 일으켜 국가와 사회에 일익을 담당한다는 일념으로, 늘 정직한 기업정신을 원칙으로 삼았다.

정직한 기업정신을 바탕으로 온 힘을 기울여 매진하는 정성스러운 기업인의 자세를 항상 모범으로 생각하며, 롯데그룹을 일궈왔다.

시작한 사업은 최고의 경쟁력을 갖출 때까지 다른 부분을 엿보지 않는 것도 평소 신 명예회장의 경영 소신이었다. 신 명예회장이 손을 대고 시작한 사업은 국내 관련업계에서 최고를 차지하고 있다.

실제 롯데제과와 롯데칠성음료, 호텔롯데, 롯데쇼핑, 롯데월드 등이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며 업계를 선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신 명예회장은 특히 롯데호텔·롯데월드를 비롯한 관광산업에 큰 관심을 보이며 대규모 투자를 했다.

신 명예회장은 관광산업을 21세기의 전략산업으로 키워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갈수록 줄어든다고 말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부터 그들이 한국을 다시 찾도록 만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신 명예회장은 1973년 서울 소공동에 롯데호텔을 개장했고, 이후 국내 첫 호텔 브랜드의 해외 진출을 이끌었다. 1987년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실내 테마파크인 ‘롯데월드’까지 건립했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세계 최고층 빌딩을 지어 한국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만들겠다는 꿈을 가지고 롯데월드타워 건설을 진두지휘했다.

이를 위해 1988년 사업이행에 필요한 부지를 매입한지 30년 만이자 롯데 창립 50주년이 되는 2017년에 초고층빌딩을 포함한 롯데월드타워가 개장했다. 30여 년간 걸친 신 명예회장의 집념이 결실을 맺은 순간이었다.

현재 우리나라 최고층 건물이자 최대 규모의 쇼핑몰인 롯데월드타워는 고용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는 한편, 서울의 랜드마크로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며 국내 관광산업 활성화에 앞장서고 있다.
 

2011년 롯데월드타워 건설 현장을 방문한 신격호 당시 롯데 총괄회장. (사진=롯데지주)
2011년 롯데월드타워 건설 현장을 방문한 신격호 당시 롯데 총괄회장. (사진=롯데지주)

◇70여년간 그룹 경영…건강악화로 ‘영면’

70여 년간 경영에 힘을 쏟은 신 명예회장은 2015년 회장직에 이어 2016년 호텔롯데 대표와 그룹의 모태인 롯데제과 사내이사에서 물러났다.

2017년에는 롯데쇼핑과 롯데건설, 롯데자이언츠, 일본 롯데홀딩스, 롯데알미늄 이사직에서도 물러나면서 롯데 경영에서 손을 뗐다.

이 과정에서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간의 경영권 분쟁이 불거지면서, 신 명예회장의 정신건강 문제가 공개되고 수감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법원은 ‘정상적인 사무처리 능력이 없다’며 사단법인 선을 한정후견인(법정대리인)으로 지정했다. 이후 경영비리 혐의로 2017년 12월 징역 4년·벌금 35억원을 선고받았으나 고령 등 건강상의 이유로 법정 구속은 면했다.

2018년 6월 법원 결정에 따라 신 명예회장은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레지던스에서 소공동 롯데호텔로 거처를 옮겼으며, 이후 건강이 악화해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신 명예회장의 유족으로는 부인 시게미쓰 하츠코(重光初子) 여사와 장녀 신영자 이사장,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 차남 신동빈 회장,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 씨와 딸 신유미 씨 등이 있다.

신춘호 농심 회장과 신경숙 씨, 신선호 일본 식품회사 산사스 사장, 신정숙 씨, 신준호 푸르밀 회장, 신정희 동화면세점 부회장이 동생이다.

신 명예회장의 장례는 롯데그룹장으로 치러진다. 이홍구 전 국무총리와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명예장례위원장을, 롯데지주 황각규·송용덕 대표이사가 장례위원장을 맡는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월22일 오전 6시다. 발인 후 22일 오전 7시 서울 롯데월드몰 8층 롯데콘서트홀에서 영결식이 마련된다.

parkse@shin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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