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갑질 성추행' 몸살…부실한 관리감독 도마 위
농협 '갑질 성추행' 몸살…부실한 관리감독 도마 위
  • 박성은 기자
  • 승인 2020.01.14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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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공주 모 농협 여간부, 남직원 입맞춤 등 성희롱 문제 불거져
'3대 청산대상' 의지에도 여고 실습생·매장 여직원 등 피해 지속
중앙회 미온적 대처 급급…차기회장 임기 내 근절 의지 보여야
서울 서대문 농협중앙회 본관. (사진=박성은 기자)
서울 서대문 농협중앙회 본관. (사진=박성은 기자)

농협중앙회가 지역농협들의 성추행 사건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농협중앙회 전임 회장을 비롯해 현재 회장의 공백을 메우고 있는 허식 부회장 등 임원이 성추행 근절 의지를 표명했지만, 결과적으론 역부족인 형국이다.

농협중앙회가 솜방망이 처벌로 화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이달 말 선출되는 새로운 수장이 임기 내 풀어야 숙제로도 지목되고 있다.

◇성추행 가해자는 주로 조합장·고위간부

1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농협중앙회는 새해에도 성추행 사건이 불거지는 등 구설수가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충청남도 공주의 한 지역농협에서 최고위직을 맡고 있는 여성간부 A씨가 회식자리에서 반복적으로 남성 직원들에게 입을 맞추고 엉덩이를 만지는 등 성희롱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 같은 내용은 지난해 전국협동조합노동조합(이하 협동노조)이 A씨의 성추행을 비롯해 리베이트 횡령, 장시간 노동 지시 등의 비위를 문제 삼으면서 드러났다. 

A씨는 자체 감사를 통해 정직 3개월 징계를 받고, 지난해 12월 업무에 복귀했다. 그러나 A씨의 태도는 바뀌지 않고 조합장마저 A씨를 두둔하자, 해당농협 직원들은 현재 ‘횡령, 성폭력, 부정부패, 괴롭힘 힘들고 싫습니다’라는 노란 리본을 달고 근무하며 적극적인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A씨는 성추행 등의 비위사실을 전면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협동노조는 농협중앙회 조합감사위원회 사무처(이하 조감처)에 A씨에 대한 감사를 촉구했고, 농협 감사위원회는 지난 1월8일부터 10일까지 감사를 실시했다. 관련 결과 발표까지는 대략 한 달 정도 걸릴 전망이다. A씨는 대기발령인 상태다.

협동노조 관계자는 “A씨의 성추행은 한두 번이 아닌 몇 년간 반복해서 일어난 것이며, 관련 증거들도 수집했다”며 “농협 직원들은 해당 간부가 다시 업무에 복귀하면 2차 피해를 입는 건 아닌지 우려가 무척 크다”고 말했다.  

지역농협 간부들의 갑질 성추행은 비단 어제 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지난해에는 서울의 모 조합 산하 지점 관계자들이 여고 실습생 2명을 성추행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가해자들은 농협 지점장과 직원으로, 이들은 1박2일 하계 캠프 때 만취 상태에서 여고 실습생 2명을 성추행했다. 가해자들은 인사위원회를 통해 각각 정직 4개월, 3개월 처분을 받았다.

2018년 제주농협 한 조합장은 지역 하나로마트 매장 여직원을 성추행한 혐의로 징역 8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으나, 구속 4개월 만에 보석신청이 받아들여져 바로 업무에 복귀했다.

2017년 대구 달서구 어느 농협의 부지점장급 간부는 10년 가까이 20~30대 여직원 20여명에게 수시로 사적 만남을 강요하거나 외모 평가·음란물 전송 등의 성추행한 점이 드러나 정직 6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같은 해 전라남도 낙농업협동조합 소속 팀장급 한 간부는 남자직원 성기를 만지거나 신혼여행을 다녀온 여직원에게 성적모욕을 줘 문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중앙회 차원의 감사가 차일피일 늦어지면서 해당 가해자는 징계 처분을 제대로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3대 청산대상 '성추문' 처벌은 솜방망이

일각에서는 농협중앙회가 지역농협 간부들의 갑질 성추행에 대해 미온적으로 대처하다보니 이러한 사건사고들이 지속 발생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중앙회 내에 지역농협의 관리감독을 맡고 있는 조감처가 있지만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농협중앙회는 지난해 2월 당시 김병원 중앙회장 주재로 ‘범농협 조직문화 개선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성추문·갑질·도덕적 해이를 3대 청산대상으로 선정했다. 특히 성 관련 사고는 감경사유 적용을 배제해 예외 없이 일벌백계로 중징계 처분하기로 공언한 바 있다.

이어 7월 ‘계열사 준법감시 최고 책임자 긴급회의’를 연 자리에서 허식 농협 부회장(현 회장 직무대행)은 “조직 내부에 은폐된 비리사건이 있다면 무관용 원칙에 따라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지역농협 간부들의 갑질 성추행은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농업계의 한 관계자는 “징계에는 규정에 따라 경고 또는 견책, 직무정지, 개선명령 등이 있는데, 성추행의 경우 대부분 경고성으로 2~3개월가량의 가벼운 정직 처분만 내렸다”며 “가해자들은 주로 지역농협 조합장이나 고위간부인데, 중앙회가 이들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하고 면죄부를 주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농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새로 선출될 중앙회장은 성추행 근절을 위해 지위·책임이 높은 임원일수록 처벌 수위를 높이고, 비위 농협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는 등의 강력한 의지를 보일 필요가 있다”며 “이번 선거에 나서는 회장 후보들부터라도 농협의 성추행 근절을 약속하고, 관련대책을 발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앙회 “법 테두리 안 절차 통해 철저히 감사 노력”

농협중앙회는 지역농협의 성추행 사건들 중 일부 성희롱으로 판명된 것도 있지만, 조합 운영진과 노조 사이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나온 이슈들도 있어 구분해서 봐야한다는 입장이다.

또 매년 상·하반기에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성폭력 예방교육을 정기적으로 하고 있지만, 전국에 1118개라는 수많은 조합이 있다 보니 일일이 통제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공주농협의 경우 해당 고위간부의 비위가 처음 접수됐을 때 성추행 건은 신고 되지 않았는데, 조합장과 노조 간의 갈등이 심해진 가운데 추가로 불거져 나온 것”이라며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사안은 중앙회와 지역농협, 노조 간의 시각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성추행 등 민원이 발생하면 사안의 경중에 따라 법 테두리 안에서 자체 감사 또는 지역검사국이나 중앙회 조감처 등의 절차를 통해 비위 감사를 철저히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parkse@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