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합법적인 '아파트 발코니 확장' 강매
[기자수첩] 합법적인 '아파트 발코니 확장' 강매
  • 천동환 기자
  • 승인 2020.01.14 15: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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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본주택 취재는 대체로 즐겁다. 기자가 직접 들어가 살 집은 아니지만, 깨끗하고 멋들어지게 꾸며진 새집을 구경하다 보면 대리만족 같은 게 느껴진다. 견본주택을 둘러보는 방문객들의 눈은 기자보다 더 반짝인다. 취재가 목적인 사람과 직접 살 집을 찾는 게 목적인 사람의 차이인 듯하다.

목적은 다르지만, 기자와 방문객들의 시선이 공통으로 머무는 위치가 있다. 바로 거실·방·주방 바닥에 그려진 점선이다. 점선 옆에는 '여기부터 발코니 확장 구간입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점선을 기준으로 외벽 방향은 발코니 확장 선택 시 실내 공간이 되고, 확장하지 않으면 실외 발코니 공간이 된다. 3년여 전 건설부동산부에 발령받아 처음 견본주택 취재를 나갔을 때는 이 점선을 두고 참 많이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 발코니를 확장해서 실내 공간으로 사용하는 게 좋을까? 아니면 그대로 두고 이런저런 용도로 활용하는 게 좋을까?'

하지만 이후로 여러 차례 견본주택을 다니면서 이런 고민이 크게 필요치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최근에는 더더욱 불필요한 고민거리가 됐다.

지금 건설사들은 발코니 확장 상태를 기본으로 아파트를 설계한다. 바닥에 그려진 점선 밖을 발코니로 내어 주면 안방에도 침대를 놓을 수 없을 정도다. 굉장히 특이한 구조의 집에 살길 원하는 소비자가 아니라면 발코니 확장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 것이다.

발코니 확장은 지난 2006년 1월 합법화됐다. 불법적인 발코니 확장이 빈발하자 정부가 이를 합법 영역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발코니를 원하는 소비자조차 발코니를 가질 수 없게 만드는 이상 현상으로 변질했다.

기본 설계가 발코니 확장 상태인데, 발코니를 확장하려면 추가 비용도 지불해야 한다. 오히려 '발코니가 없는 아파트에 추가 비용을 내고 발코니를 만드는 게 맞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발코니 확장 합법화가 가져온 장점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이상한 형태로 변질한 합법화가 소비자의 선택권을 좁히고 있는 상황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안방 침대를 포기하고 발코니를 선택할 것인가, 발코니를 포기하고 안방 침대를 선택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cdh4508@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