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칼럼] '현상설계' 심사 방법에 대한 단상
[기고칼럼] '현상설계' 심사 방법에 대한 단상
  • 신아일보
  • 승인 2019.12.29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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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신 에스아이그룹건축사사무소 상무
 

현상설계를 진행하는 경우, 모든 건축가가 그러하듯이 나 자신도 건축가로서의 경험과 사례에 대한 분석, 그리고 가끔 번쩍이며 스쳐 가는 아이디어로 다른 경쟁 건축가들보다 우위의 평가를 점할 수 있는 안을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필자는 최근 현상설계 공모전을 마쳤다. 그 과정에서 나의 경험과 생각 그리고 판단을 팀원들과 함께 공유했다. 객관적 기준과 판단을 유지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토론을 내부 팀원들과 반복하는 일련의 검증 과정도 경험했다.

이 같은 절차를 거치면서 문득 '나는 왜 현상설계를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 적이 있다. 

즉, 잠시 현상설계 참여의 목적이 내 자신을 개인적인 딜레마(dilemma)에 빠지게 만든 것이었다. 건축이라는 직업 분야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인 것인지 

혹은 사내에서 계획적인 업무에 대한 내 한 켠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려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신규 프로젝트 수주 차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수익 활동인 것인지.

건축사사무실도 하나의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이익단체로서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곳이다. 아무리 그 결과물로서 사회에 공헌하는 기여도가 크고, 개인과 사회의 삶과 행동 방식을 담아낸다고 하더라도 곧 '수익 창출'이라는 명제 하에 일련의 작업 과정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우리 건축가들이 모두 인지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잠시 현상설계에 참여하는 동안은 회사의 이익 추구와 관계없이 오로지 각각의 작업자 혼자서 수용자를 위한 인고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 

그 프로젝트의 성격과 목적 등 무엇이 좀 더 그 프로젝트를 이용할 수용자들에게 편리할 것인지 혹은 더 풍요롭고 다채로운 공간 활용을 제안 할 것인지를 고민한다. 잠시나마 소속된 회사가 바라보는 그 프로젝트의 실익을 떠나서 오로지 그 프로젝트의 공간에 대한 고민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잉태된 결과물이 누가 더 많은 고민과 아이디어를 제시했는가보다 어떤 작품이 해당 프로젝트의 심사위원들을 더 설득할 수 있느냐로 귀결되는 경향이 있다. 

선정이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출품된 각각의 안들이 가진 특성은 조금씩 다를 것이며, 어렵게 그 나름의 논리와 해법을 가지고 건축공간을 풀어냈을 것이다. 그런데도 과정의 노력은 보상받지 못한 채 결국 수주 또는 수주 실패라는 흑과 백의 두 가지 극단적인 결과로 받아들이게 된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그 극단적인 결과가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몇몇 분들에 의해 짧은 시간에 신속히 결정지어지는 것은 공모전에 임하는 많은 열의를 가진 건축가들에게는 납득할 수 없는 상황으로 비춰질 때가 흔히 있다. 이제는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인 측면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캐나다의 주민 복지센터의 경우 주민 참여형 의사결정 공모전을 시행해 사용할 주체인 수용자가 직접 투표를 함으로서 설계안의 당선작을 결정하는 예도 있다. 국내에서도 현상설계에 수용자를 참여시키는 방안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예를 들면, 국내 재개발사업의 경우 공모전에서 당선작이 주민들과 마찰로 인해 무산되거나 사업 자체가 표류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현재는 연구에 그치더라도 앞으로 수용자가 공모전의 작품에 심사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은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 건축가들이 직면해야 할 사항일 것이다.

/홍승신 에스아이그룹건축사사무소 상무

master@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