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조로의 영화 속 법률] ‘백두산’의 긴급피난
[이조로의 영화 속 법률] ‘백두산’의 긴급피난
  • 신아일보
  • 승인 2019.12.26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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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로 법무법인 태일 변호사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백두산은 우리 한민족의 영산(靈山)이다. 청나라 시조 누루하치의 출생지로 알려져 있어 청나라 때 만주족의 영산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백두산은 장백산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중국의 명칭이 아니라 우리나라가 사용한 이름 중의 하나다. 

백두산이 화산이라는 인식이 희미하지만 엄연한 활화산이다. 서기 946년에 발생한 백두산 화산 폭발로 약 1000㎞ 떨어진 일본에 5㎝의 화산재가 쌓였다고 한다. 이 화산 폭발이 ‘해동성국’이라고 불렸던 발해의 멸망원인이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백두산의 화산 폭발 시기나 규모에 대해서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어렵다. 백두산에 대규모 화산 폭발이 있으면 북한 지역이 초토화되어 아주 심각한 문제가 생길 공산이 크다. 영화 ‘백두산’(감독 이해준)은 이러한 백두산 화산 폭발을 소재로 하고 있다. 

작품 속에서, 조인창(하정우 분)은 백두산 화산 폭발로 땅이 갈라지고 건물이 무너지는 지진을 만나자 중앙선을 침범하고 다른 차량을 들이 받고도 그냥 아내 지영(수지 분)이 있는 집으로 향한다. 이러한 긴박한 상황에서 발생한 중앙선 침범, 도주차량 운전죄 등은 처벌될까? 

어떤 행위를 형사 처벌하기 위해서는 범죄가 성립되어야 한다. 어떤 행위가 범죄로 성립되기 위해서는 구성요건에 해당하고, 위법성 조각사유(정당방위, 정당행위, 긴급피난 등)가 없어야 하고, 책임 조각사유(형사미성년자, 적법행위기대 불가능성 등)가 없어야 한다. 

즉, 사람을 때리거나 밀치는 행위는 폭행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폭행이 칼이나 총으로 공격하는 상대방에 대한 것이었다면 정당방위나 긴급피난으로 위법성이 조각되어 폭행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위법성 조각사유가 없다고 하더라도 14세 미만인 형사미성년자가 폭행을 하였다면 책임이 조각되어 폭행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긴급피난은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행위로서 범죄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의 위법성을 조각한다. 즉, 인도에 돌진하는 차량을 피하려고 옆에 있는 행인과 충돌하여 상해를 가했다고 하더라도 긴급피난으로 위법성이 없게 되어 상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긴급피난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현재의 위난이 존재해야 한다. 긴급피난에서 위난의 현재성은 이미 발생한 위난 상태에 처해있거나 위난 발생이 거의 확실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를 말한다. 그러므로 과거나 장래의 위난은 현재성이 없으므로 긴급피난이 허용되지 않는다.

긴급피난에서 위난이란 법익침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상태로서 사람의 행위뿐만 아니라 동물의 공격, 천재지변 등도 위난이 될 수 있다. 위난이 위법하지 않더라도 긴급피난이 가능하고, 위난이 위법하면 긴급피난뿐만 아니라 정당방위도 인정될 수 있다. 

긴급피난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피난행위에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즉, 피난행위에 의해서 보호되는 이익이 침해되는 이익보다 본질적으로 우월해야 한다. 사람의 생명, 신체는 자유나 명예보다 우월하고, 사람의 자유나 명예는 재산적 법익보다 우월하다고 볼 수 있다.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마땅히 일정한 위난을 감수해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예, 군인, 소방관, 경찰관 등)에게는 긴급피난이 허용되지 않는다. 이들의 직무내용이 개인 법익에 대한 위태화를 전제로 할뿐 만아니라 자신의 이익보다 부과된 의무가 더 중시되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운전하여 집으로 가던 조인창에게 땅이 갈라지고 건물이 무너지는 지진은 현재의 위난에 해당한다. 자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중앙선을 침범하고 차량을 충돌하여 다른 사람에게 상해를 가한 것은 상당한 이유가 있는 피난행위로서 긴급피난에 해당할 수 있다.
  
/이조로 법무법인 태일 변호사

master@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