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정부가 보호할 주택 실수요가 사라진다"
[기자수첩] "정부가 보호할 주택 실수요가 사라진다"
  • 천동환 기자
  • 승인 2019.12.26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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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부쩍 자주 지인들의 부동산 투자 경험담을 듣게 된다.

대기업에 다니는 30대 A 씨는 몇 년 전부터 집중적으로 부동산 투자를 공부하더니 대출까지 끌어모아 여러 개 부동산을 사고팔았다. 투자 대상을 고를 때는 지역과 종류를 가리지 않았다.

서울은 물론, 한동안 집값이 가파르게 올랐던 대전도 투자 지역으로 삼았다. 최근에는 청약조정대상지역에서 해제되면서 들썩이고 있는 부산에서 투자 대상을 물색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렇게 몇 년간 과감한 투자를 감행해 대출을 갚고, 현금화한 것이 10억원에 달한단다.

또 다른 지인 30대 B 씨는 최근 경기도 안양시에서 신규 분양한 아파트 단지 청약에 당첨됐다. 그는 분양권에 5000만원 웃돈을 받고 바로 처분했다고 한다. B 씨는 부동산 투자를 공부하지 않은 평범한 주부다.

그리고 40대 직장인 C 씨는 몇 년 전 경기도 하남시 위례에서 6억원대에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지금 이 아파트 매매가는 9억원대로 뛰었다. C 씨는 불어난 자산을 활용해 다시 새집으로 이사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C 씨는 "만약에 이 아파트에 청약하지 않았더라면 어쩔 뻔했냐?"며 만족해했다.

지인들의 사례에서 기자가 주목하는 것은 부동산 투자라는 영역에서 투자수요와 실수요자 간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A 씨는 자신을 명확하게 부동산 투자자로 규정하고, 주변인들에게도 노하우를 설파하고 있을 정도지만, B 씨와 C 씨는 실수요 개념에서 부동산에 접근했던 이들이다. 그러나 시장은 실수요자가 의도치 않았던 '투자의 맛'을 느끼게 했다.

정부가 부동산 규제를 겹겹이 쏟아내고 있지만, 여전히 투자자들은 틈새시장을 찾아 자산을 불리고 있고, 실수요자들도 투자 행렬에 가세하고 있다.

정부는 실수요를 보호하는 정책을 편다지만, 보호 대상인 실수요가 잠재적 투자수요라는 사실은 참 아이러니하다.

기자는 집을 투자 대상으로 여기는 개념을 극히 경계하지만, 자산 증식 수단이 마땅치 않은 현실에서 부동산을 대하는 보편적 국민의 시각을 탓할 수만은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도 이상적인 개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시장을 바라봐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투자수요를 싸워 이겨야 할 상대로 보기에는 그 대상이 너무 광범위하다.

cdh4508@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