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장-검찰 간 신경전 고조… 고성으로 말싸움도
변호인과 마찰도… "사법 현실 보여주는 한 현장"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재판에서 검찰과 재판부가 고성까지 주고받으면서 충돌했다.
검찰의 공소장 변경 허가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은 이후 양측의 갈등이 고조되는 모습이다.
1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송인권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정 교수의 표창장 위조사건 및 입시비리·사모펀드 의혹 사건 공판준비기일이 열렸다.
이날 재판에서는 변호인이 아닌 재판부가 검찰과 첨예한 공방전을 벌이는 이례적인 광경이 연출됐다.
양측의 신경전은 검찰이 공판준비기일에서 재판부가 소송 지휘를 한 데 대한 이의를 표시하는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한 것에서 비롯됐다.
오전 10시께 재판이 시작되자마자 검찰은 지난 기일 진행에 관해 항의했다. 검찰은 "공판중심주의에 맞춰 먼저 지난 기일 조서에 관한 서면을 구두로 말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러자 재판부는 "재판부의 예단이나 중립성을 지적한 부분은, 그런 지적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재판부 중립에 대해 되돌아보겠다"고 말했다.
또 표창장 위조 사건의 공소장 변경을 불허한 데 대해 검찰이 이의를 신청한 내용이 공판조서에 누락돼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수정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법정에 직접 출석한 고형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장이 "재판 진행 관련해서 전혀 진술을 못 하게 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다시 이의를 제기했다.?
이에 재판부는 "돌아보겠다고 말했고, 공판조서에 반영하겠다고 했다. 자리에 앉으라"고 제지했으나 고 부장검사는 "의견을 전혀 듣지 않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을 이었다.
다른 검사들도 연이어 일어서 "왜 의견 진술 기회를 주지 않느냐"며 이의를 제기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10분 가까이 검사들의 항의와 재판부의 "앉으라"고 지시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송인권 부장판사의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다.
고 부장검사가 "진심으로 (의견 진술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재판부가 "그렇다"고 답했다.
강백신 부부장검사가 "이 소송 지휘에 이의를 제기한다"고 하자, 재판부는 말을 끊으며 "기각하겠다"고 했다. "무슨 내용의 이의인지도 듣지 않느냐"는 항의에도 재판부는 "앉으라"고 했다.
이후로도 재판이 진행되는 내내 수시로 검찰이 이의를 제기하고, 재판부가 이를 끊는 상황이 이어졌다. 변호인이 의견을 밝히는 와중에도 이 같은 상황은 반복됐다.
한 검사는 "검찰은 한마디도 못하게 하시고, 변호사에게는 의견서를 실물 화상기에 띄우게 하신다"며 "전대미문의 재판을 하고 있다"고 재판부를 비판했다.
강 부부장검사도 "변호인이 말할 때는 구체적 의견까지 묻고, 검사가 말할 때는 중간에 말을 끊으신다"며 "의견을 끝까지 듣고 답하는 방식으로 소송 지휘를 해달라"고 주장했다.
재판부의 제지에도 검찰이 번갈아 가며 의견 개진을 계속하자 방청석에서는 야유가 나오기도 했다.?재판부가 이의를 제기하는 검사에서 "이름은 무엇이냐"고 묻기도 했다.
양측의 신경전은 검찰과 변호인 간의 갈등까지 번졌다.
정 교수의 변호인은 "공판중심주의 대전제는 재판장의 소송지휘에 충실히 따르는 것을 전제한다"면서 "30년 재판을 했지만 이런 재판은 본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법에 따라 이의 제기는 가능하지만, 이에 앞서 재판장으로부터 발언권을 얻고, 재판부가 설정한 의제에 따르는 것이 기본"이라며 "검사 모두가 오늘 재판장 발언을 제재하거나 일방적으로 말했다"고 강조했다.
고 부장검사는 "지금 변호인은 소송 수행과 관련해 발언 기회를 얻었지, 저희를 비난할 기회를 얻은 것이 아니다"면서 "저희도 재판장이 이렇게 검찰 의견을 받아주지 않는 재판을 본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송 부장판사는 "중립적 재판 지휘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공방을 진정시켰으나, 이날 재판은 변호인 측이 검찰이 제출한 증거 등을 모두 확인하지 못하고 마쳤다.
검찰은 정 교수가 구속 기간 내에 심리를 마쳐야 한다는 이유에서 향후 조 전 장관 가족의 사모펀드 의혹보다 입시비리 의혹을 먼저 심리해 달라는 의견을 밝혔다.
재판을 마무리하며 고 부장검사는 "신속·공정한 재판을 원하는 마음에서 낸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 부분은 안타깝다"며 "재판 진행이 원활하지 않은 부분에 책임을 통감하고, 앞으로는 불필요한 잡음이나 마찰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재판을 마친 뒤 변호인은 "변호사로서 오늘 재판 진행에 대해 검사들이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인지 대단히 충격을 받았다"며 "이것이 우리 사법 현실을 보여주는 한 현장"이라고 비난했다.
[신아일보] 박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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