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환법 반대' 시위 재개… 2주 만에 최루탄 등장
'송환법 반대' 시위 재개… 2주 만에 최루탄 등장
  • 이상명 기자
  • 승인 2019.12.16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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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경찰이 15일 한 쇼핑몰 내부에서 반정부 시위를 벌이던 시민을 붙잡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홍콩 경찰이 15일 한 쇼핑몰 내부에서 반정부 시위를 벌이던 시민을 붙잡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자유를 갈망하는 홍콩인들의 반정부 시위가 다시 열렸다. 

16일 외신보도에 따르면 전날 홍콩 시위대는 사틴·카오룽베이·정관오·타이쿠·콰이풍·코즈웨이베이·침사추이 등 홍콩 시내 7개 쇼핑몰에서 시위 주제가인 ‘홍콩에 영광’을 열창하며 일명 ‘크리스마스 쇼핑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홍콩 정부의 행정 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과 중국 국가주석인 시진핑의 면담을 앞두고 홍콩 시내 곳곳에서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아울러 이들 시위대는 “5대 요구 중 하나도 빼 놓을 수 없다” 등의 구호를 외친 후 시위대의 5대 요구 사항을 언급했다.  

홍콩 시위대의 5대 요구 사항은 △범죄인 인도 법안 공식 철회 △경찰 강경 진압에 관한 독립적인 조사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한 것 철회 △체포된 시위대원의 조건 없는 석방과 불기소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 등이다.

특히 이들 시위대는 사틴 지역 뉴타운플라자 등에서 쇼핑몰 유리창을 깬 후 친중 재벌 기업인 맥심 그룹이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식당에 들어가 기물들을 파손하며 해당 식당 이용객들에게 심한 야유와 비난을 퍼부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시위가 진행중인 쇼핑몰 건물 내로 진입, 최루액을 쏴 시위 진압에 나섰으며 이 과정에서 카오룽베이 쇼핑몰 내에 있던 어린이가 최루액을 맞아 눈을 다치기도 했다.  

그러나 홍콩의 2000여 명의 사회복지사들은 도심 센트럴 에든버러 광장에 모여 집회를 연 후 홍콩 정부를 향해 시위대의 5대 요구 조건을 수용하라고 촉구하며 17일부터 사흘간 총파업을 불사하겠다고 다짐했다.

더욱이 애드머럴티 지역 내 소재한 퍼시픽플레이스 쇼핑몰에서는 지난 6월15일 송환법 반대를 외치며 투신한 바 있는 마르코 렁 씨를 추모하는 집회가 열려 강경 진압에 나선 홍콩 경찰의 모습과 대비되는 상황이 연출됐다. 

또한 몽콕 지역에서는 전날 밤늦게까지 시위대의 필사적인 반발이 이어졌고, 경찰 또한 최루탄 발사를 강행하며 시위 진압에 나섰지만 시위대의 저항은 더욱 격렬해졌다.

지난 1일에는 시위대와 경찰이 심각한 충돌을 겪자 시위대 진압에 나선 경찰은 최루탄을 사용한 바 있다. 약 2주가 지난 현재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다시 최루탄을 발사했다.

반면, 지난 8일 도심에서 벌어졌던 시위는 80만 명이 운집했지만 비교적 평화롭게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친중파 시민 1만1200여 명(경찰 추산)도 애드머럴티 타마르 공원에 모여 시위대의 폭력성을 비판하는 집회를 열었다. 

같은 날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베이징에서 시진핑 주석을 만나 올 한해 업무 보고를 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지난달 24일 홍콩 구의원 선거를 통해 친중파 진영이 참패를 한 후 맞은 첫 공식 만남이어서 중국 지도부가 람 장관에 대해 재신임을 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한편, 홍콩은 1842년 영국과 청나라의 아편 전쟁 이후 양국 간 맺은 난징 조약으로 홍콩 섬이 영국 소유로 넘어갔으며 또한 1860년 베이징 조약을 통해 홍콩 주룽 반도 남단부는 영구히 영국령이 된 바 있다. 

이어 1898 영국은 신계지구를 99년간 임차했다. 그러면서 영국은 사실상 홍콩까지 지배해 왔다. 이처럼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해버린 홍콩의 반환 협정은 1984년 12월19일 중국과 영국 정부가 홍콩이양을 결정한 협정으로 ‘중영 공동 성명’으로 부른다. 

특히 1982년 9월 마커깃 대처 영국 총리가 중국을 방문한 기간 동안 양국 지도자는 홍콩 문제에 대해 심도읬게 토의하고 각자의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홍콩 이양 문제에 대해 계속적인 상의를 합의했다. 

이에 따라 1983년 7월~1984년 9월까지 양국 정부는 22회의 회담을 통해 합의를 도출, 마침내 1984년 12월19일 베이징에서 대처 총리와 자오쯔양 총리는 중국에 홍콩을 이양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이 조약으로 홍콩은 1997년 7월1일 중국에 이양됐지만 중국의 특별행정구로 남아 향후 50년간 사회·경제적으로 기존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게 됐다. 이 때부터 중국과 홍콩은 일국양제가 적용됐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홍콩을 특별행정구로만 바라보지 않고 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홍콩 이양이 결정될 당시 홍콩의 사회 분위기는 지금의 대만보다 더 자유롭고 선진화된 도시로 여겨졌지만 홍콩의 중국 이양이 결정된 후 일국양제 50년 중 반이 지난 현재 홍콩시민들은 연일 자유를 부르짖으며 시위대로 나서고 있다. 

vietnam1@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