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멍드는 주류산업, 소통 없는 정부 규제가 문제
[기자수첩] 멍드는 주류산업, 소통 없는 정부 규제가 문제
  • 박성은 기자
  • 승인 2019.12.16 13: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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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보호·건전 음주문화 조성이라는 정부 취지는 100% 공감해요. 그런데 주류업계와 별다른 소통 없이 ‘나를 따르라’는 식의 규제만 하는 것 같아 좀 씁쓸하네요.”

최근에 만난 주류업계 어느 관계자의 얘기다. 주류업계가 정부의 잇따른 규제에 꽤 난감해하는 모습이다. 관련 정부부처의 법 개정으로 맥주의 유색 페트병 퇴출이 불가피해졌고, 주류 광고·마케팅에도 더욱 엄격한 제동이 걸리기 때문이다.

맥주의 유색 페트병 퇴출은 이달 25일부터 시행되는 환경부의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자원재활용법)’ 개정안과 연관이 깊다. 정부의 친환경 정책의 일환으로 재활용이 어려운 용기 사용을 금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소주의 경우 이미 투명 페트병으로 교체되고 있지만, 맥주는 기존의 유색 페트병을 바꿀 경우 품질 변질 우려가 크기 때문에 일단 개정안에서 예외를 두고 관련 연구용역이 진행 중이다. 이달 말 환경부가 결과보고를 할 예정이지만, 업계에서는 유색 페트병 대체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퇴출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정부가 어떤 대체품을 대안으로 내놓을지는 모르나, 주류업계는 정부안에 따라 기존의 유색 페트병의 재고 처리는 물론 새로운 제조설비를 갖춰야 하는 부담을 지고 갈 수밖에 없다. 교체에 따른 제품의 맛이나 품질에 부작용이 생길 경우 그 책임 역시 주류업체가 져야 한다. 그렇지만 이런 부담을 어떻게 분담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없는 상황이다.

주류 마케팅에 대한 제약도 더욱 많아지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현재 주류용기 포장지에 연예인 사진 인쇄를 금지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또, 내년부터 주류 광고에 연예인이 술을 마시는 모습과 ‘캬~’하는 소리 등 음주를 자극하는 장면을 넣을 수 없도록 했다.

주류산업의 경우 특성상 타 산업군보다 규제가 많다보니, 업체들이 광고·마케팅 면에서 소극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연예인을 활용한 주류 광고는 업체 입장에서 상당히 효과가 큰 마케팅이다. 특히 인지도가 없는 신제품을 홍보하거나, 기존의 브랜드를 새롭게 선보일 때 무척 활용도가 높다고 한다. 하지만 마케팅이나 광고 수단이 점점 줄어들거나 제약을 받으면서, 업계 고민은 점점 늘고 있다.

친환경과 건강을 장려하기 위한 정부의 취지를 반대할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선의(善意)의 규제라 할지라도 이해 관계자들과 충분히 만나서 설명하고, 논의하고, 대안을 찾는 소통의 과정이 전제돼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아쉽게도 현 정부는 주류산업과 관련한 여러 규제를 진행하고 있음에도, 이와 관련해 업계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정부가 주류업계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선의를 앞세워 기업활동을 일방적으로 규제하는 건 아닌지 안타까움이 든다.

소통 없는 규제는 취지가 좋다 한들 괜한 반감과 피로도만 높일 뿐이다.  

parkse@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