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김현미 국토부 장관의 '괜한 부탁'
[기자수첩] 김현미 국토부 장관의 '괜한 부탁'
  • 천동환 기자
  • 승인 2019.12.09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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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 보도자료가 끊긴 지도 벌써 한 달이 훌쩍 넘었다. 나름 민첩하게 움직여보려 하지만, 역시 정상적으로 일하기가 쉽지 않다. 아니 힘들다.

오늘도 오전 11시에 엠바고가 풀리는 보도자료를 오전 11시까지 기다렸다가 국토부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아 기사로 만들어야 한다. 점심 한 끼 챙겨 먹기도 버거운 일정이다.

국토부 대변인실이 기자단 매체와 기자단이 아닌 매체에 대한 차별을 강화하면서 기자단 울타리 밖에서 일하기가 확실히 더 힘들어졌다.

정책자료로 굳이 속도 경쟁까지 할 필요는 없기 때문에, 기사를 조금 늦게 내보내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진짜 문제는 충분한 취재 시간을 확보할 수 없어, 기자단 매체가 쓴 기사에 비해 속도와 질 모두 뒤처진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기사에 자기 이름을 박아서 내보내고 싶은 기자가 대한민국에 있을지 모르겠다. 국토부 대변인실은 자신들이 한 행위가 일선 기자들에게 얼마나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는지 알기나 할까?

지난 한 달 동안만 해도 국토부는 중요한 보도자료를 다수 배포했다.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적용 지역을 발표했고, 문재인 정부 출범 후 2년 반 동안의 국토부 성과와 앞으로 과제도 소개했다. 철도노조의 무기한 파업에 따른 비상수송대책 시행 계획도 알렸다.

모두 국민 생활에 밀접한 내용을 담은 자료들인 만큼 국민 관점에서 충분히 취재한 후 보도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에선 그러지 못했다. 국토부가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자료를 정리하는 수준에서 기사를 올리기에 급급했다. 가끔은 내가 쓴 기사가 국토부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보도자료보다 가치가 없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2017년 6월23일.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세종청사 대강당에서 취임하던 날이 생각난다. 취임식을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온 김 장관에게 다가가 인사하고, 가볍게 악수했다.

기자가 "축하합니다"라고 말했고, 장관은 "잘 부탁합니다"라고 답했다.

김 장관은 취임 후 자신에게 처음 인사를 건넨 기자가 기자단 밖에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거다. 알았다면, 보도자료도 받지 못하게 될 기자에게 굳이 "잘 부탁한다"고 할 이유가 없었을 테니 말이다.

cdh4508@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