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국민이 불편해야 성공하는 '철도 파업'
[기자수첩] 국민이 불편해야 성공하는 '철도 파업'
  • 천동환 기자
  • 승인 2019.11.21 15: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철도노조가 총파업을 실행에 옮기면서 열차 여객 및 화물 운송이 차질을 빚고 있다. 국가 기간 교통망인 철도 운영이 원활치 못한 상황은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지만, 씁쓸하게도 국민들은 이제 철도 파업에 익숙하다. 그동안 철도와 관련한 많은 노조들이 크고 작은 파업을 지속해왔기 때문이다.

이유야 어찌 됐든 매일 반복되는 출퇴근은 물론 출장, 여행 등 일상을 함께 하는 철도가 비정상화됨에 따라 발생하는 불편은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교통 분야 파업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 즉각적이면서도 큰 불편을 야기한다.

노조와 정부도 이런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파업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용하는 모습이다.

철도노조는 지난 20일 무기한 총파업을 알리는 보도자료에 '철도공사 및 자회사의 파업으로 열차 운행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적었다. 파업으로 인해 국민적 불편이 발생할 것을 알고, 이 부분을 적극적으로 홍보해 정부를 압박하려는 속셈으로 보인다.

손병석 철도공사 사장은 철도노조가 파업을 시작한 몇 시간 후 "파업을 막지 못해 죄송하다"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여기에도 공사를 향한 국민적 불만을 잠재우고, 비판 여론을 노조 쪽으로 돌리려는 계산이 깔렸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는 국민은 불편을 넘어 화가 날 지경이다. 경영자든 노동자든 공기업 임직원들은 모두 공공적 성격을 띠고 국민에 봉사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그런데 한두 번도 아니고 "이제 지겹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잦은 파업을 불러오는 행태는 공직자들 스스로가 기본적인 본분을 망각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물론, 파업은 노동자들의 당연한 권리기 때문에 그 자체를 두고 뭐라 할 수는 없다. 다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국민적 불편에 무감각한 것을 넘어 오히려 이를 이용하려는 듯한 태도는 파업의 본질 조차 흐린다. 안전하고 편리한 철도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투쟁이라며 국민적 지지를 요청하기도 하지만, 당장 발이 묶인 이들에게 이런 논리가 와 닿기는 쉽지 않다. 노조 자신들에게도 부정적 영향이 큰 파업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철도노조는 이번 파업과 관련한 요구 조건 중 하나로 KTX-SRT 통합을 요구하고 있는데, 지금 상황은 SRT의 존재감을 오히려 키우고 있다. 파업으로 인해 KTX 운행률이 평시 대비 70%대 수준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그나마 다른 고속철도인 SRT가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철도 경쟁체제를 부정하며 SRT를 없애자고 주장하는 파업이 되려 SRT가 상징하는 경쟁체제의 필요성을 일깨우고 있는 꼴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철도 교통의 정상적인 운영이 절실한 시기에 있다. 아니 정상적인 수준보다 더 적극적인 철도의 지원이 필요한 시기다. 대입 수험생들은 전국을 오가며 인생을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시험을 치르고 있고, 당장 다음 주에는 한-아세안 대화관계 수립 30주년을 기념한 특별정상회의가 국내에서 숨가쁜 일정으로 치러진다. 이런 시기에 우리 철도가 "일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우리나라 철도는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언제까지 노사 간 다툼으로 인한 불편을 국민들이 참아줘야 하는가? '공공성 강화와 국민 편익'을 외치는 철도 파업의 진정성이 좀처럼 와 닿지 않는다.

cdh4508@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