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희생양 전락 농업, 분노 쌓인 농가
[기자수첩] 희생양 전락 농업, 분노 쌓인 농가
  • 박성은 기자
  • 승인 2019.11.11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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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1일은 먹거리 생산에 힘쓴 농가의 노고를 격려하고, 농업인의 긍지를 고취하고자 제정된 ‘농업인의 날’이다. 농업인의 날은 농촌계몽운동가인 원홍기 선생이 지난 1964년에 처음 제안한 이후, 정부가 1996년부터 공식 기념일로 제정하면서 매년 농업의 중요성과 국민 먹거리를 책임지는 농민의 소중함을 재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 농업인의 날을 맞으면서 전국의 250만 농업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 불편하고 허탈한 마음이 가득한 상황이다.
 
정부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 못 이겨 지난달 25일 WTO(세계무역기구)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를 공식 선언한데 이어, 이달 4일 중국·호주·아세안(ASENA) 등 15개국으로 구성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타결에도 참여해 내년 최종서명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농업계는 정부의 이 같은 결정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개도국 지위를 포기할 경우 쌀 관세는 지금의 513%에서 최대 154%까지 크게 낮아져 식량안보에 큰 차질이 생기는 것은 물론, 농업소득 보전을 위한 각종 보조금 지급도 지금의 1조5000억원 수준에서 8000억원대로 거의 반토막 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초대형 FTA(자유무역협정)로 꼽히는 RCEP 협정이 내년에 공식 체결되면 농산물 수입개방 폭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져, 한국농업의 생산기반 자체가 붕괴될 위험이 크다.

국내 최대 농업단체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연)’는 “WTO 개도국 지위 상실과 RCEP 최종 타결이 본격화되면 국내 농축산물 시장은 세계 최대 농업 강대국인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희생양으로 전락해 농업부문 피해가 불 보듯 훤하다”며 “농업계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은 정부의 이번 결정에 분노와 울분을 금할 수 없다”고 성토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농업을 직접 챙기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또, 문재인 정부 출범 첫 해인 2017년 당시 22회 농업인의 날 기념식 때 이낙연 국무총리가 참석해 “정부가 농업 발전과 안정을 위해 적극 지원하고, FTA 등에서 우리 농산물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임기 반환점을 도는 이 시점에 현 정부가 천명했던 농정에 대한 의지가 250만 농업인에게 제대로 전달됐는지는 여전히 물음표다.

그간 농업계에서는 ‘1년짜리’ 임기로 말 많았던 두 명의 농식품부 장관과 농업계 요구에 한참 못 미친 농정예산 등으로 현 정부를 두고 ‘농업 홀대’, ‘농업계 패싱’ 아니냐는 한탄이 지속됐다. 더욱이 매년 반복되고 있는 농축산물 가격폭락과 ‘아프리카돼지열병’에 대한 사후약방문 식의 미흡한 대처는 농가 분노만 키웠다.

한농연을 비롯한 전국 농민단체들은 오는 13일 대규모 집회를 예고한 상태다. 정부는 아스팔트 거리로 나오는 농가들의 분노와 어려움을 엄중히 인식하고, 어떻게 풀어갈지에 대한 현명한 응답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parkse@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