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세평] 4차 산업혁명과 인격기반사회
[신아세평] 4차 산업혁명과 인격기반사회
  • 신아일보
  • 승인 2019.11.1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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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서 EU정책연구소 원장
 

지난달 28일 정부는 인공지능(AI)은 인류의 동반자라며 연내 인공지능 분야를 국가차원에서 육성하는 방안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촉발된 1차 산업혁명, 전기, 석유를 통해 격변이 이루어진 2차 산업혁명, 컴퓨터, 인터넷 등 디지털 기술혁명으로 일컬어지는 3차 산업혁명 시대를 지나 바야흐로 지금은 인공지능으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이다. 미래학자인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은 3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수십만 개의 사업체와 수억 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 또한 3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전통적인 중앙집권화 경영활동이 분산될 것이고 경제 및 정치권력에서 볼 수 있는 전통적인 계급조직이 사라질 것이라고 예견한바 있다. 그가 3차 산업혁명 시대에 예견했던 인터넷 기술과 재생 에너지의 융합으로 탄생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공동권력 및 권력의 수평적 이동은 아직 한국에서는 발현하지 않은 것 같다. 

과거 산업혁명에서 소외되었던 지구상 극빈국들도 3차 산업혁명의 새로운 시대에는 도약이 가능할 것이라는 청사진을 제시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3차 산업혁명 시대는 과거 1차, 2차 산업혁명 시대와는 달리 사라지는 직업에 비해 새로 탄생하는 직업의 수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다. 이제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 시대이다. 4차 산업혁명의 경쟁력은 인공지능 기술과 빅데이터이다. 기존에 있던 일자리마저 인공지능이 대체할 것이 거의 확실시되기 때문에 일자리의 급격한 증가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상업은 여전히 인류의 생존에 필수적인 부분일 것이다. 다만 인공지능을 갖춘 대체물들이 더 많은 상업 활동을 관리감독 할 것이다. 따라서 전통적인 계급조직이 사라지거나 대체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지금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인 동시에 자유주의 시대이다. 경쟁을 미덕으로 하는 자유주의는 민주주의와 결합하며 다른 이념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금의 자유주의는 뜻하지 않게 수많은 사람들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라 이름 붙여진 횡포한 자유주의의 확산에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능력을 박탈당하고, 가정을 잃고, 사람을 잃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보자면 현재의 자유주의에는 자유가 없다. 다만 효용과 부의 증대, 자본의 힘만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신자유주의가 경제의 효율성에서는 성공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사회정의와 인간의 연대성을 다루는 데는 실패했다는 앤소니 기든스(Anthony Giddens)의 말은 현실이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인간의 참된 삶에서 개인의 경제적 여유만큼이나 타인과의 연대가 중요하다는 생각에 동의한다. 또한 풍요로움을 통해 더 나은 자신을 창조하고 그 풍요로움을 타인과 나눔으로써 더 나은 공동체를 창조할 때, 안정적인 공동체 속에서 더욱 자율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롤즈(John Rowls)가 정의론에서 주장한 분배의 공정성이 보장될 수 있는 안정적인 공동체가 가능할까? 2018년 옥스팜(Oxfam)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틀에 한 명씩 억만장자가 새롭게 탄생하며, 이들의 부는 하루 2달러 이하로 생활하는 최빈곤층의 빈곤을 7번이 끝낼 수 있을 만큼의 부에 해당한다고 한다. 4차 산업혁명이 완성될 시기가 와도 이 수치에는 크게 변화가 없을 것이고 신자유주의는 지속될 것이다.

한편, 과거 백과사전식 지식이 중요했다면 현재는 전문지식을 제외하고는 인터넷 검색으로 필요한 지식 습득이 가능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즉, 역설적으로 지식기반사회에서 지식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삶의 대부분을 인공지능과 전문가에게만 맡기는 공부안하는 사회가 될 가능성은 더욱 커져만 간다. 따라서 대한민국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자유주의 시대의 생존 수단인 가격경쟁력도 일반 지식의 습득도 아니다. 선진국이 따라 올 수 없는 인격기반 사회로 나아가야지만 경쟁력이 생길 것이다. 이제 다시 문치주의 전통을 찾아내 지식에 기반을 둔 문화국가였던 조선의 장점들을 반추해야 할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시점이 온 것이다. 과거 그리스인들의 생각처럼 미래는 앞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뒤에서 오기 때문이다.

/이종서 EU정책연구소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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