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정보 불균형 조장하는 국토부…'대국민 정책'도 기우뚱
[기자수첩] 정보 불균형 조장하는 국토부…'대국민 정책'도 기우뚱
  • 천동환 기자
  • 승인 2019.11.04 0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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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국토교통부 정책을 취재하고, 관련 기사를 쓴다. 하지만, 국토부 출입기자는 아니다. 나는 국토부 출입기자라 생각하지만, 국토부는 나를 출입기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국토부가 인정하는 출입기자는 50여개 언론사가 가입돼 있는 기자단 소속 기자들 뿐이다.

지난해 9월13일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정부서울청사에서 9·13부동산대책을 발표할 때였다. 한 인터넷 매체 기자가 신분증을 가져오지 않아 청사 출입에 어려움을 겪자, 국토부 대변인실 관계자가 도우러 왔다. 그런데, 기자를 돕던 그가 갑자기 "국토부 출입기자가 아니지 않냐"며 "왜 거짓말을 하냐"면서 화를 냈다. 기자단에 속해 있지 않은 매체 기자가 왜 국토부 출입기자라고 거짓말을 했냐는 의미였다.

그러자 당황한 기자는 "기자단은 아니지만 나도 국토부에 출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변인실 관계자는 끝내 그를 국토부 출입기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번 정부는 유독 부동산 대책을 자주 발표했다. 그만큼 기자단 울타리 밖 기자들이 받는 설움은 크고 잦았다. 국토부는 기자단에 대책 발표 장소와 일정을 공지하지만, 그 외 기자들에게는 그런 공지를 하지 않는다. 내 연락처와 이메일 주소가 국토부 대변인실 컴퓨터에 저장돼 있지만, 그런 공지는 기자단에만 공유한다.

이 때문에 대책 발표가 있을 거라는 얘기가 돌기 시작하면, 나는 구걸하듯 정보를 모으기 시작한다. 발표가 당장 내일이라는데, 저녁 늦게까지 국토부 대변인실의 답은 '미정'이다.

하는 수 없이 타 매체 기자들에게 물어 정보를 얻는다. 바로 원하는 정보를 얻으면 다행이지만, "모른다"는 답변을 들었을 때는 시간을 두고 몇 번이고 묻고 또 물어야 한다.

기자단이라는 울타리 밖에서 생기는 정보의 제한은 국토부 산하 기관에서도 똑같이 발생한다. 국토부 장관 간담회는 말할 것도 없고, LH와 도로공사, 한국철도, 감정원 등 산하 기관장 간담회나 중요한 행사 정보도 오롯이 기자단 차지다. 기관장 간담회라는 것이 웃고 떠들며 밥이나 먹는 자리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의미 있는 내용이 언급된 경우에는 가보지도 못한 간담회 기사를 다른 매체 기사를 보고 써야 한다.

이 같은 정보 불균형은 주거복지 및 신도시 등 국민 생활과 밀접한 정책 내용을 담은 국토부 보도자료 배포 과정에서 정점을 찍는다. 조간신문용 보도자료의 엠바고가 풀리는 시간은 인터넷을 기준으로 오전 11시다. 기자단은 이 자료를 최소 엠바고 해제 전날 받지만, 기자단 밖 기자들은 엠바고 해제 30분 전에 자료를 받아왔다. 30분 안에 취재와 기사 작성, 데스킹까지 마쳐야 제시간에 기사를 내보낼 수 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시간이지만, 그래도 감지덕지하며 기사를 썼다.

그런데 최근 국토부가 이 30분이라는 시간마저 빼앗아버렸다. 기자단 밖 기자는 오전 11시 엠바고가 풀린 후 홈페이지에 게시한 보도자료를 내려받아 사용하라는 것이다. 매일 보내던 보도자료를 끊으면서도 사전 공지조차 없었다. 기자단에 발을 들여놓지 못한 기자들은 이제 수십 개 기사가 국민들에 뿌려졌을 때야 비로소 보도자료를 열어볼 수 있다.

국토부의 이 같은 조치는 곧 기자단에 속하지 않은 매체는 국토부 정책 보도자료에서 손을 떼라는 의미나 다름없다. 정보력이 생명인 기자들을 대상으로 극단적 정보 불균형을 가한 것이다. 더욱 충격적이고 실망스러운 사실은 이 같은 결정이 국토부 기자단의 요구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수많은 매체가 활동하는 언론 환경에서 보도 윤리 준수와 질서 유지 차원의 기자단 순기능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언론이 언론을 통제하고, 기자가 기자를 통제하며, 나아가 정부가 기자를 통제하도록 조장하는 지금 상황은 백번을 곱씹어봐도 인정할 수 없다.

이런 불균형은 단순히 어떤 기자가 정보를 빨리 얻고, 어떤 기자가 정보를 늦게 얻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는다. 정책 관련 뉴스의 방향이 특정 매체들이 주도하는 쪽으로 쏠리고, 국민들은 다양성이 결여된 정보를 접하게 된다는 것이 어쩌면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어떤 이들은 나의 이런 주장을 '듣보잡(듣지도 보지도 못한 잡놈)' 기자의 지질한 푸념으로 치부할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이런 목소리를 내는 것이 계란으로 바위 치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자라는 명함은 누가 뭐래도 국민과 독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국민들이 정보의 불균형에 놓이는 것을 막는 것도 기자의 역할이다.

국민들 또한 이런 상황에 침묵하는 기자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cdh4508@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