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반대 운동으로 구속돼 호송차 이동할 때 창 밖으로 보인 모친"
문재인 대통령의 모친 강한옥 여사가 29일 92세를 일기로 별세한 가운데, 이는 현직 대통령 재임 중 모친상을 치르는 첫 사례가 됐다.
강 여사는 함경남도 흥남 출신이다. 함흥농고를 나와 흥남시청 농업과장을 지낸 남편 고(故) 문용형씨와 1950년 12월 흥남철수 때 고향을 떠나 경남 거제로 피란 온 피란민이다.
문 대통령은 저서 '운명'에서 "어머니는 이남에서 혈혈단신이었다. 피난살이가 너무 힘들고 고달파서 도망가고 싶을 때가 많았는데, 세상천지에 기댈 데가 없어서 도망가지 못했노라고 농담처럼 말씀하시곤 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거제 피난살이 중인 1953년에 태어났다.
거제에서 부친은 포로수용소에서 노무일을, 모친은 문 대통령을 업고 계란을 머리에 이고 부산으로 건너가 파는 행상으로 살림을 꾸렸다고 한다.
문 대통령의 부모는 그렇게 돈을 모아 문 대통령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부산 영도로 이사했다.
부친은 부산에서 공장에서 산 양말을 전남지역 판매상들에게 공급해 주는 장사를 했지만 순탄치 않았고, 집안의 생계를 꾸려나간 것은 모친이었다고 한다.
강 여사는 시장 좌판에 옷을 놓고 팔거나 연탄배달을 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문 대통령의 아버지는 1978년에 별세했다.
문 대통령은 저서에서 "아버지는 내가 대학에서 (유신 반대 학생운동을 한 탓에) 제적당하고 구속됐다가 출감 후 군대에 갔다 왔는데도 복학이 안 되던 낭인 시절, 내가 제일 어려웠던 때 돌아가셨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아버지를 위해서도 늦게나마 잘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 사법시험을 보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어머니에게 "이왕 고생하신 거, 조금만 더 고생하시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또 "혼자서 어머니를 생각하면 늘 떠오르는 장면"이라며 자신이 유신반대 운동을 하다 구속돼 호송차를 타고 이동할 때 창 밖으로 보이던 어머니의 모습을 그리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1975년 총학생회 총무부장을 맡아 유신반대 시위를 주도해 경찰에 체포됐다.
당시 스스로 걸어가 체포된 문 대통령은 유치장에 구속·수감 돼 열흘간 조사를 받고 검찰에 송치됐다.
검찰에 이송되는 날 호송차 뒤편으로 밖을 내다보던 문 대통령의 눈에 모친이 들어온 것이다.
문 대통령은 "차가 막 출발하는 순간, 어머니가 차 뒤를 따라 달려오고 계셨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팔을 휘저으며 '재인아! 재인아!'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어머니가 아들의 구속 소식을 듣고 부산에서 급히 올라왔다가 이송될 때 얼굴이라도 보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기다렸을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멀어지는 호송차를 바라보고 계셨다"고 떠올렸다.
또 "마치 영화 장면 같은 그 순간이 지금까지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며 "가끔씩 면회 오는 어머니를 뵙는데, 영 미안하고 괴로웠다"고 했다.
또한 문 대통령은 모친에게 가장 효도했던 순을 꼽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3일 KBS '2019 만남의 강은 흐른다'에 출연해 강 여사의 이산가족 상봉의 날을 기억하며 "제가 아마 평생 제 어머니한테 제일 효도했던 것이 우리 어머니 모시고 갔던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2004년 참여정부 시민사회수석으로 재임 중이었을 때 북에 있던 어머니의 여동생(문 대통령에겐 이모)의 신청으로 이산가족에 선정된 것이다.
제1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장의 금강산 온정각에서 푸른색 한복을 입은 이모 강병옥(당시 55세)씨를 만난 강 여사는 "네가 병옥이냐"고 물으며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그 장면을 옆에서 지켜본 문 대통령은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쳤다.
문 대통령은 KBS 인터뷰에서 "처음에 이모님이 오시는데 정작 우리 어머님은 금방 알아보지 못하셨다. 그러나 저는 척 보니 알았다"며 "우리 어머니 그 연세 때 모습과 똑같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