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모친 별세… "재인아" 부르며 호송차 쫓아오던 어머니
文대통령 모친 별세… "재인아" 부르며 호송차 쫓아오던 어머니
  • 김가애 기자
  • 승인 2019.10.29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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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남철수 때 경남 거제로 피란와… "기댈 데 없어 도망가지 못했다"
"유신반대 운동으로 구속돼 호송차 이동할 때 창 밖으로 보인 모친"
문재인 대통령의 모친인 강한옥 여사가 29일 향년 92세로 별세했다.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당시 청와대 사회문화수석)이 지난 2004년 7월 11일 제10차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어머니 강한옥 여사와 함께 금강산 해금강 호텔에 도착하는 모습.(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의 모친인 강한옥 여사가 29일 향년 92세로 별세했다.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당시 청와대 사회문화수석)이 지난 2004년 7월 11일 제10차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어머니 강한옥 여사와 함께 금강산 해금강 호텔에 도착하는 모습.(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의 모친 강한옥 여사가 29일 92세를 일기로 별세한 가운데, 이는 현직 대통령 재임 중 모친상을 치르는 첫 사례가 됐다. 

강 여사는 함경남도 흥남 출신이다. 함흥농고를 나와 흥남시청 농업과장을 지낸 남편 고(故) 문용형씨와 1950년 12월 흥남철수 때 고향을 떠나 경남 거제로 피란 온 피란민이다.

문 대통령은 저서 '운명'에서 "어머니는 이남에서 혈혈단신이었다. 피난살이가 너무 힘들고 고달파서 도망가고 싶을 때가 많았는데, 세상천지에 기댈 데가 없어서 도망가지 못했노라고 농담처럼 말씀하시곤 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거제 피난살이 중인 1953년에 태어났다. 

거제에서 부친은 포로수용소에서 노무일을, 모친은 문 대통령을 업고 계란을 머리에 이고 부산으로 건너가 파는 행상으로 살림을 꾸렸다고 한다. 

문 대통령의 부모는 그렇게 돈을 모아 문 대통령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부산 영도로 이사했다.

부친은 부산에서 공장에서 산 양말을 전남지역 판매상들에게 공급해 주는 장사를 했지만 순탄치 않았고, 집안의 생계를 꾸려나간 것은 모친이었다고 한다. 

강 여사는 시장 좌판에 옷을 놓고 팔거나 연탄배달을 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문 대통령의 아버지는 1978년에 별세했다.

문 대통령은 저서에서 "아버지는 내가 대학에서 (유신 반대 학생운동을 한 탓에) 제적당하고 구속됐다가 출감 후 군대에 갔다 왔는데도 복학이 안 되던 낭인 시절, 내가 제일 어려웠던 때 돌아가셨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아버지를 위해서도 늦게나마 잘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 사법시험을 보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어머니에게 "이왕 고생하신 거, 조금만 더 고생하시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모친인 강한옥 여사가 29일 향년 92세로 별세했다.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당시 청와대 사회문화수석)이 지난 2004년 7월 11일 금강산 온정각휴게소에서 열린 제10차 남북이산가족 첫 단체상봉에서 어머니 강한옥 여사(왼쪽)와 함께 북측의 작은 이모인 강병옥 씨를 만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의 모친인 강한옥 여사가 29일 향년 92세로 별세했다.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당시 청와대 사회문화수석)이 지난 2004년 7월 11일 금강산 온정각휴게소에서 열린 제10차 남북이산가족 첫 단체상봉에서 어머니 강한옥 여사(왼쪽)와 함께 북측의 작은 이모인 강병옥 씨를 만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또 "혼자서 어머니를 생각하면 늘 떠오르는 장면"이라며 자신이 유신반대 운동을 하다 구속돼 호송차를 타고 이동할 때 창 밖으로 보이던 어머니의 모습을 그리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1975년 총학생회 총무부장을 맡아 유신반대 시위를 주도해 경찰에 체포됐다. 

당시 스스로 걸어가 체포된 문 대통령은 유치장에 구속·수감 돼 열흘간 조사를 받고 검찰에 송치됐다. 

검찰에 이송되는 날 호송차 뒤편으로 밖을 내다보던 문 대통령의 눈에 모친이 들어온 것이다. 

문 대통령은 "차가 막 출발하는 순간, 어머니가 차 뒤를 따라 달려오고 계셨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팔을 휘저으며 '재인아! 재인아!'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어머니가 아들의 구속 소식을 듣고 부산에서 급히 올라왔다가 이송될 때 얼굴이라도 보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기다렸을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멀어지는 호송차를 바라보고 계셨다"고 떠올렸다.

또 "마치 영화 장면 같은 그 순간이 지금까지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며 "가끔씩 면회 오는 어머니를 뵙는데, 영 미안하고 괴로웠다"고 했다.

또한 문 대통령은 모친에게 가장 효도했던 순을 꼽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3일 KBS '2019 만남의 강은 흐른다'에 출연해 강 여사의 이산가족 상봉의 날을 기억하며 "제가 아마 평생 제 어머니한테 제일 효도했던 것이 우리 어머니 모시고 갔던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2004년 참여정부 시민사회수석으로 재임 중이었을 때 북에 있던 어머니의 여동생(문 대통령에겐 이모)의 신청으로 이산가족에 선정된 것이다. 

제1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장의 금강산 온정각에서 푸른색 한복을 입은 이모 강병옥(당시 55세)씨를 만난 강 여사는 "네가 병옥이냐"고 물으며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그 장면을 옆에서 지켜본 문 대통령은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쳤다.

문 대통령은 KBS 인터뷰에서 "처음에 이모님이 오시는데 정작 우리 어머님은 금방 알아보지 못하셨다. 그러나 저는 척 보니 알았다"며 "우리 어머니 그 연세 때 모습과 똑같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gakim@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