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칼럼] 우리 동네 케이블TV 기사로 일한다는 것
[기고 칼럼] 우리 동네 케이블TV 기사로 일한다는 것
  • 신아일보
  • 승인 2019.10.17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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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근 딜라이브 디지털OTT 기사
 

어느 따듯한 봄날, 그날도 여느 때와 똑같이 일과를 시작했다. AS 한 건이 접수됐다. 나이 지긋한 노부부가 살고 계신 집이다.

“안녕하세요! 딜라이브 케이블 설치기사입니다. 들어가도 될까요?”

두 분은 마치 아들인양 반겨하시며 흔쾌히 문을 열어주신다.

“안녕하세요! 뭐가 잘 안되시나요?” 어제저녁부터 TV가 나오지 않아 심심해 죽겠다는 하소연이 먼저다. “네 제가 금방 봐 드리겠습니다.”라고 안심 시킨 후 점검을 시작해 갔다. 문제의 원인은 단순 조작 미숙이다. 간단한 설명과 함께 “고객님 이제 잘 나오실 겁니다”라고 말씀드렸지만 비슷한 조작미숙은 또 생길 거라는 예감이 든다. 

점차 늘어나고 있는 노령가구의 특징이다. 간식거리까지 챙겨주며 기뻐하시는 노부부의 모습에 전염된 것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앞으로 TV 문제 생기면 언제든 연락해주세요”라며 명함을 드리자 어르신들은 더 안심이 되는 눈치다.

내 예상대로 그 후로도 노부부로부터 조작 미숙에 따른 단순 AS 요청이 여러 차례 들어왔다. 노부부는 내가 방문할 때마다 자신들의 조작미숙을 자책하며 집에 있는 음료수를 대접하는 것으로 미안한 마음을 대신하곤 했다. 

두 분께서는 거동이 불편해 TV가 없으면 하루도 견디기 힘들 정도로 TV가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 후에도 지속된 만남으로 노부부는 나에게 있어서 고객이 아닌 부모님처럼 친숙해져 가고 있었다. 

이젠 전화번호만 봐도 “네 어르신 또 TV가 안 나오나요? 바로 가겠습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가을이 접어들 무렵 그 노부부 집에서 해지 철거 접수가 들어왔다. 난 이상한 마음에 그 노부부 댁으로 전화를 걸었다. 젊은 분이 전화를 받는다.

“안녕하세요! 딜라이브 기사입니다. 장비회수 하러가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약속된 시간에 방문했다. 문 안쪽 공기가 서늘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겹게 맞아주시던 할머니께서 주무시다 돌아가셨다고 하신다. 할머니를 먼저 보내신 어르신이 내 손을 지그시 잡으시며 그동안 고마웠다고 눈물을 흘리시는데, 나 역시도 큰 슬픔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제 혼자가 되신 어르신도 아들 집으로 가실 모양이다. 옆에 있는 아들도 그간의 사정을 전해 들었는지 나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넸다.

이제 두 분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하다. 항상 두 분이 TV 앞에 앉아 계신 모습만 보다 혼자되신 어르신을 보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착잡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어르신께 “어르신 아드님 집에 가셔도 아프지 마시고 건강하세요” 라고 말씀을 건네며 그 집을 나섰다. 요즘 들어 부쩍 고령가구가 늘면서 한편으로 부모님을 대하듯 정겨운 추억도 쌓이지만 안타까운 사연도 접하게 된다.

지역미디어의 특성상 케이블 방송사의 기사로 근무하면서 고객 멀티 서비스를 담당하게 될 때가 많다. 때로는 부서진 장을 고쳐 드리기도 하고, 형광등을 갈아 드리는 것은 당연한 업무가 됐다. 외출이 간단치 않은 어르신들을 위해 간단한 심부름을 해드리기도 한다. 모두가 내 이웃이고 가족이라 생각하면 아무리 어려운 부탁이라도 힘이 불끈 난다.

내가 기분이 좋아야 고객도 기분이 좋아진다는 말을 되새긴다. 케이블TV의 CS 업무를 그만두는 그날까지 모든 케이블TV 가입자들에게 편안한 서비스를 제공할 것을 다짐한다. 

매스미디어 시대에 케이블TV는 차별화된 경쟁력을 제공하며 지역성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 기사들의 이러한 노력은 케이블TV의 차별화를 이끄는 힘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장근 딜라이브 디지털OTT 기사

master@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