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지 잃은 국책은행, 대기업 위주 지원에 정책금융 실종
취지 잃은 국책은행, 대기업 위주 지원에 정책금융 실종
  • 이혜현 기자
  • 승인 2019.10.15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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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 등 주요 국책은행들이 대기업 위주의 금융지원을 하면서 상대적으로 중소기업을 홀대해 정책금융의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산업은행의 여신지원 대기업 편중 현상은 심각했다. 산은의 대기업 여신은 2015년 한 차례 소폭 하락한 이후 계속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국내 기업의 정책금융 비중 현황 자료에 따르면 산은의 기업 대출 중 중소기업의 경우 2015년 26%에서 2018년 25%로 1%포인트 감소한 반면, 대기업은 2015년 35.4%에서 2018년 39.4%로 4%포인트 증가했다. 이는 국내은행 총 대출 중 대기업 비중이 2015년 이후로 계속 감소하는 추세와 중소기업 대출을 늘리라는 정부 방침과도 상반되는 행보다.

또 산은이 조선업체에 선수금환급보증(RG)을 발급할 때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차별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산은에서 제출받은 'RG 신청 및 처리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산은은 2016년부터 올해까지 162개 사업에 6조5098억원의 RG를 제공했다. 대기업 127개 사업(5조8834억원), 중견기업 25개 사업(6010억원), 중소기업 10개 사업(254억원)으로 나타났다.

대기업 127개 사업 중 124개(97.6%)는 RG 신청 당일 발급됐다. 중견기업도 25개 사업 모두 당일 처리됐다. 반면 중소기업은 10개 중 3개만 당일 처리됐고, 길게는 108일까지 걸린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당일 발급된 대기업 사업의 경우 STX조선해양(2012∼2015년 13건)과 한진중공업 수비크조선소(2018년 4건) 등 17건에서 산은이 선수금을 대신 지급하는 보증 사고를 냈다.

한국수출입은행의 경우 최근 5년간 기업 M&A(인수합병) 금융지원 4조여원 중 중소기업에 지원된 금액은 전무했다.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수은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14년부터 올해 7월까지 수은이 기업 M&A 금융지원 4조3867억원 중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은 0원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금융지원은 대기업에 4조789억원, 중견기업에 3078억원 각각 이뤄졌다. 전체 금융지원액 중 실제 국내 수출기업의 수출 판로 확대와 원천기술 확보에 도움이 되는 국내기업의 해외기업 인수에는 42.8%인 1조8781억원이 투입된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기업 해외법인의 해외기업 인수에는 37.8%인 1조7586억원, 국내기업의 국내기업 인수에는 19.4%인 8500억원이 각각 투입됐다.

IBK기업은행도 IP담보대출을 고신용등급 기업에만 해줬다는 문제점이 드러났다.

김병욱 의원이 금융감독원과 기업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은행별 IP담보대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중소기업은행의 IP담보대출이 상대적으로 신용등급이 높은 4등급 이상의 기업에만 실행됐다.

2017년 8건, 2018년 12건에 불과했던 기업은행의 IP담보대출은 지난 해 말 지적재산(IP)금융 활성화를 위한 종합대책 발표 후 올해 7월까지 52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공급 규모도 2017년 36억원에서 2018년 44억으로, 올해는 165억원으로 늘었다.

문제는 건당 공급액이 오히려 줄었다는 것이다. 2017년 건 당 공급액은 4억5000만원이었으나 지난 해 3억7000만원, 올해는 3억2000만원으로 점차 감소했다.

올해 7월까지 시중은행과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이 IP담보대출로 공급한 금액은 총 2373억원이다. 이 중 산업은행의 공급액이 1180억원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고, 하나은행이 716억원, 신한은행이 176억원으로 뒤를 이었다.

기업은행이 IP담보대출 공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에 불과했고, 건당 대출액도 3억원으로 가장 적었다.

특히 대출이 실행된 기업의 신용등급을 살펴보니, 기업은행은 5등급 이하의 중소기업에는 대출을 아예 실행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은행들이 신용등급이 5~6등급에 속해있는 기업들에게도 IP담보대출을 해준 것과 달리 기업은행은 비교적 신용등급이 우수한 1~4등급의 중소기업에만 대출을 실행했다. 지적재산권이라는 담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평균금리도 다른 은행에 비해 높은 편에 속했다.

hyun11@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