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세평] 조국사태 35일, 파국은 면했으나 이 깊은 상처는
[신아세평] 조국사태 35일, 파국은 면했으나 이 깊은 상처는
  • 신아일보
  • 승인 2019.10.14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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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태 한국정경문화연구원장

 

조국장관이 35일 만에 스스로 사퇴를 했다.

콕 찌르면 파란 물이 주르르 쏟아져 내릴 듯 한 가을 청량감이 답답하다 못해 화병으로 치닫던 우리 세상을 확 풀었다. 결과가 이렇게 되자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일시에 허물어져 허탈하기까지 하다. 이는 35일간 천하를 뒤흔들었던 조국장관 임명을 밀어붙인 집권여당과 문재인 대통령의 일방적 민심 읽기 착오가 빚어낸 국민적 참사이며, 국민들의 가슴에 쉽게 치유되기 어려운 깊은 상처를 남겼다.

비록 정치적 견해와 시각을 달리한다 하지만 수백만의 시민들이 무더기로 광장에 몰려나와 단 한 치도 물러설 기색이 없이 양극으로 치닫는 제어 불가 상황을 본다는 것은 정치적 견해와 상관없이 국민 모두에게 크나큰 상처 말고는 남긴 것이 없다.

이른바 촛불 군중이 광화문 광장에서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던 함성을 다시 듣는 형국이었다. 제도정치의 무능과 실패가 하루하루 살기에도 고달픈 시민들을 거리로 불러냈던 것이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상대를 탓하기에만 핏발을 세웠다.

문재인 대통령은 작금의 사태를 국론분열 보다는 다양성의 표출이라고 했다. 원론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다. 대의민주주의가 제 몫을 다하지 못하여 주권자인 국민이 광장에 나와서 직접 목소리를 내는 것은 민주주의가 한 단계 성숙하는 것이라 보는 것 또한 틀린 견해는 아니다. 그러나 사회적 현상이나 파장이 그 정도를 넘어서면 이상 현상으로 보고 적정한 처방을 내려야 한다. 다양성이 도를 넘으면 갈등으로 변하는 것이 상식이다.

결국 국정 최고책임을 진 대통령의 이와 같은 인식은 편향적 인식오류였거나 확실히 편파적이었다. 갈등과 분열에 불씨를 붙였고 파국으로 가는 분수령이 되었다. 미운 오리 새끼는 있어도 미운 우리 새끼는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진보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국민의 41%의 지지를 받아 국정 운영의 최고 책임자가 되었다. 그래서 문대통령은 취임사에서부터 진보가 지향하는 가치인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를 천명하였고, 그 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공언해 왔다.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나라다운 나라만큼 진보의 핵심가치를 함축하는 말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만큼 위험성도 크다. 검증되지 아니한 불확실성에 기대를 거는 것이기도 하다. 여간한 통찰력이나 치밀한 분석력과 실력이 받쳐주지 못하면 실패할 확률도 크다. 세계적 추세로 보면 진보세력이 집권하여 일시적 성과를 내고 국민들의 열광적 인기를 누렸지만 날개도 없이 추락한 나라가 부지기수다. 정치적 포퓰리즘과 어리석은 국민수준이 짝을 맞추어 빚어낸 참사다. 다양성을 너무 방치하고 방조한 결과이기도 하다. 갈등은 분열로 이어지고, 분열은 쪼개져 파국으로 치닫는 법이다.

조국장관이 스스로 사퇴를 선택한 것은 만시지탄이란 말밖에 더 붙일 것이 없다. 일단 조국(曺國) 블랙홀에 빠졌던 우리 조국(祖國)에게는 참 다행이다. 이제 정치권이나 시민은 모두 제 자리로 돌아가서 스스로의 역할과 삶을 아울러야 한다. 청와대 경제수석은 거시경제 지표를 들어 우리나라 살림은 문제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곳간에서 평화가 난다는 것은 몸으로 알아차린 삶의 지혜다. 크게 보면 평화경제가 국민 모두에게 더 큰 행복을 안겨 줄 것이란 희망경제 주장을 희망고문 이라고만 몰아붙이는 것은 과한 처사라 섭섭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생일에 잘 먹자고 이레를 굶자는 것은 참기 어렵다. 정치는 이념이나 미래적 가치 보다 현실이 앞설 수밖에 없다. 그래야 한다. 대통령의 말대로 국민은 국민, 정치는 정치의 자리로 돌아가 제 일을 해야 한다. 아픈 상처는 서로가 어루만져야 한다.

택시 기사분이 서민경제가 어렵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거리의 1층 가게 빈 곳이 늘어가는 것 이상은 없다고 했다. 1층 점포가 나날이 자꾸 비어간다. 치열한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자.

/박기태 한국정경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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