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돼지열병 현장순회, 확산 부추긴다
[기자수첩] 돼지열병 현장순회, 확산 부추긴다
  • 박성은 기자
  • 승인 2019.10.03 12: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프리카돼지열병(African Swine Fever, ASF)’에 대한 정부의 미숙한 대처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지난달 17일 경기도 파주에서 첫 확진 사례가 나온 이후, 현재까지 김포와 연천, 강화 등 경기 서북부지역을 중심으로 13건의 돼지열병(3일 현재)이 연이어 발생한 상황이다. 돼지열병이 국내에 발병된 지 보름이 훌쩍 지났지만, 농림축산식품부를 비롯한 방역당국은 여전히 발병원인과 경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 여러 추측과 가능성만 맴돌 뿐이다.

발병 초기 김현수 농식품부 장관을 비롯한 정부 고위공무원들은 돼지열병 역학농장과 통제초소 곳곳을 찾아다니며, 돼지농가에게 철저한 방역을 강조했다. 농식품부는 방역 현장을 찾는 김 장관의 사진과 동영상을 많은 매체에 보도자료로 수시 배포하고, 이러한 김 장관의 모습은 언론을 통해 자주 노출됐다. 언뜻 보기에는 ‘일 잘하는 장관’의 모범으로 보일만하다.

그러나 다수의 전문가와 축산업계는 돼지열병과 같은 전염성이 심각한 가축질병의 경우, 확산 차단의 기본 원칙이 외부인의 농장 접근을 최대한 막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정부는 돼지열병이 확산되자 전국의 돼지농장·가축차량 등의 일시이동중지 명령을 내렸고, 농장마다 통제초소를 두면서 외부인 접근을 금했다. 하지만 김 장관을 비롯한 고위공무원들은 예외였다.

실제 김 장관을 비롯한 농식품부 고위공무원과 수행원들은 김포·포천 등 돼지열병 역학농장들을 연이어 방문한 이후, 김 장관이 찾은 김포 돼지농장은 돼지열병 확진 판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장관 방문 하루 전만해도 음성 판정을 받아 이상이 없는 농장이었다. 김 장관의 김포 돼지농장 시찰에 쫓아온 외부인만 어림잡아 30여명이라고 하는데, 이들 모두 돼지열병 바이러스 전파와 전혀 무관하다고 확신할 수 없다.

국내서 가장 많은 돼지를 키우고 있는 충남지역 한돈협회 농가들이 정부의 이런 처사를 두고 “평소에는 관심도 없었던 고위공무원들의 현장 순회점검 요청으로 방역에 여념 없는 현장 공무원과 돼지농가를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며 “구태의연한 상명하복식 탁상 방역행정에 우려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며 분노하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돼지열병은 별도의 백신이 없어 감염되면 치사율 100%에 이르는 정말 무서운 바이러스다. 정확한 발병원인·경로가 파악되지 않은 상황에서, 확산될 경우 350만두 가까이 돼지가 살처분된 2011년 구제역 대란 이상의 위기가 올 수 있다. 국내 농축산물 생산액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양돈산업 붕괴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의미다.

정부의 ‘보여주기식 전시행정’은 돼지열병 차단은커녕 확산만 부추길 뿐이다. 전시행정에 급급하다보면 지난 구제역 대란 때처럼 다시금 신뢰가 바닥에 떨어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parkse@shinailbo.co.kr